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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Apr 08. 2024

[한국의 신화] 네가 가족이라면

신화로 생각해 보는 가족의 모양

*본 글은 명대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한 영화에 대한 인상적인 한 줄 평을 보았습니다. “되돌아오는 가족주의의 망령.” 그 문장을 본 순간 가족의 소중함을 말하는 수많은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핵가족을 넘어 이제는 핵개인의 시대라고 하는데 어째서인지 가족으로 회귀하는 서사는 여전히 유효해 보입니다. 영화에서처럼 가족이 모두에게 구원일 수 있을까 의문을 갖다가, 가족의 개념을 넓힌다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혈연관계, 혼인으로 관계 맺은 배우자와 같은 법적 가족만을 가족으로 인정해 왔습니다. 이 가족은 우리를 보호하고 품어주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주곤 합니다. 그러나 가족이 늘 구원일 수는 없다는 것, 오히려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주범일 수도 있다는 걸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더글로리〉 속 ‘동은’의 엄마나 〈무인도의 디바〉 속 ‘목하’의 아빠처럼요.


신화에도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녹아 있습니다.

신화에서는 부부가 신에게 아이를 갖게 해 달라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부모는 온 정성을 들여 신에게 올릴 공물을 마련하는 건 물론, 아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죽어서 신에게 자신의 육신을 바치겠노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얻은 아이는 부모의 사랑 속에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러는가 하면 일곱 쌍둥이가 태어나자 “동물도 한 번에 일곱을 낳진 않는다”고 징그럽다며 부인과 아이를 버리고 떠나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전통사회에서 여성이 일곱 아이를 키울 경제력을 가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먹고 살 방법이 없다 여긴 어머니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을 계획합니다.

어떤 가족은 딸이 혼전임신을 하자 양반 가문의 체면을 더럽혔다며 죽이려 합니다. 명성과 명예가 가족의 목숨보다 중요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아주 오래 전부터 가족은 구원이기도, 지옥이기도 했음을 신화에서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화에는 인물이 갖가지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쫓겨났을 때 그 옆을 지키는 존재가 그려지곤 합니다. 바로 몸종입니다. 이들의 관계가 신분제와 문서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복잡한 지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혼자였다면 분명 주저앉았을 길을 함께하고, 그렇기에 포기하지 않고 걸어갑니다. 또 서로의 어려움을 돌보고 의지하며 불확실하고 어두운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는 이 관계에서 서로를 향한 신뢰와 돌봄이 갖는 힘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자신만의 가족을 꾸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은 물론 친구, 연인 등 법적 가족 관계가 아닌 존재를 가족이라 정의하며 함께 생활합니다. 가수 이랑의 노래 〈가족을 찾아서〉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가 살고 싶은 그 집을 찾아서. 내가 사랑할 그 사람을 찾아서. 내가 되고 싶은 가족을 찾아서."

이 가사에서는 태어나며 맺어진 인연에 좌절하지 않고, 내가 꿈꾸고 바라는 관계를 함께 만들어갈 사람을 가족으로 선택하겠다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가사와 같이 나만의 가족을 꾸리겠다는 의지를 갖고 각자의 가족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모건은 가족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가족이란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되기 위해 행동하는 방식에 따라 가족의 모습도 그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되기’라는 말은 언뜻 생소해 보입니다. 하지만 언어로 규정되지 않았을 뿐, 오래전에 만들어진 신화에도 우리의 주변에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형태가 어떠하든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존재를 가족이라 칭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서로의 즐거움을 기꺼이 나누고 힘듦은 기꺼이 짊어지는 것이 가족이라면, 그런 존재를 가족이라 부른다면, 저는 모두에게 가족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가족되기’를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이미 가족이 있다면 서로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가족이라 정의할 대상이 없다면 그런 사람을 찾아 가족되기를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당연한 관계가 아닌 가족을 만들어 봅시다.


원문 출처:https://news.mj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2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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