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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May 29. 2024

[한국의 신화] 시작이 두려운 그대에게

*본 글은 명대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리듬으로 한 해를 보냅니다. 농경 중심 사회에서는 절기를 기준으로 한 해를 24등분했습니다. 대학에 둥지를 틀고 있는 저는 일 년을 1학기, 여름 방학, 2학기, 겨울 방학으로 4등분 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덧 그중 첫 번째 시절인 1학기의 마지막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저에게 1학기는 불안정하지만 기대감으로 묘하게 흥분되어 있다가, 중간고사를 기점으로 실망감과 좌절감이 한 방울씩 섞여가는 시기입니다. 학기 초의 학생들은 새로운 교우 관계,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업 방식 때문에 잘 지낼 수 있을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면서도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는 것에서 오는 설렘과 대학생으로서의 나날을 꿈꾸는 기대감으로 고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대학에서의 첫 시험을 치를 때쯤 교우 관계와 연애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고, 기대와는 다른 성적을 받으며 좌절감이 퍼져나갑니다.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1학기는 즐거우면서도 혼란스럽습니다.


그런데 최근 기대와 실망이 교차할 때 실패에의 두려움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잘 해내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에 사로잡혀 회피하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작의 혼란 앞에서 조금 더 너그러워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오늘은 신화 속 두려움에 빠진 신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신과 두려움은 이질적인 단어처럼 느껴집니다. 신이란 무소불위의 권능을 지닌 위엄있는 존재이니 두려움은 우리 같은 나약한 존재에게나 어울리는 단어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신화에서 신은 시작을 앞두고 두려워합니다. 돌풍에 궁전이 무너지자, 하늘에서는 궁을 다시 지을 목수를 물색하다 가장 유능한 목수인 ‘황우양’을 찾아갑니다. 황우양은 집을 지을 때 필요한 도구가 없다며 한사코 거절했지만, 하늘로 가서 궁을 지을 준비를 하라며 딱 사흘의 시간을 받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 앞에서 황우양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문을 걸고 방 안으로 들어가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눕습니다. 할 수 없을 것이란 마음의 소용돌이에 갇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을 선택했던 황우양은 훗날 성주신이 됩니다.


또 있습니다. ‘강림’은 원님으로부터 마을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저승으로 가 염라대왕을 잡아 오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거절했다가 죽임을 당할까 두려웠던 강림은 알겠다 대답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문을 잠그고 눕습니다. 강림을 걱정한 부인이 문을 열어 달라 사정해도 소용이 없어 문을 뜯어내고 들어가 보니 강림이 눈물을 한강같이 흘리고 있었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눈물만 흘리던 강림은 훗날 저승사자가 됩니다.


시작할 때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우리가 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가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는 더욱 알 수 없습니다. 해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은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나 황우양과 강림처럼 우리를 그 자리에 주저앉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견 당연해 보입니다.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누가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요?


황우양과 강림은 부인의 도움을 받아 일어납니다. 황우양의 부인은 사흘 만에 필요한 연장을 만듭니다. 강림은 부인이 그간 쌓은 공덕 덕에 신들의 보호 속에 저승으로 향합니다. 이들처럼 내가 당면한 어려움을 뚝딱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늘 곁에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대신 신화 속 부인들의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는 것은 가능합니다.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러니 염려 말고 우선 밥을 드세요.”



저는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의 혼란을 사랑합니다. 시작은 두렵고 불안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움트는 흥미진진함이 있으니까요. 또 아직 미숙하다는 이유를 핑계 삼아 자신을 조금 더 쉽게 용서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1학기에 마주한 실망으로 잠시 주저앉았다면, 혹은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자신을 좌절한 신과 같이 여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자신에게 신들의 부인처럼 말해주는 겁니다.


우선 밥을 챙겨 먹으며 힘을 내고 해결 방법을 찾아보자고. 나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며 추스를 시간을 주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작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나고, 의외로 손쉽게 해결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하물며 신 또한 시작할 때는 불완전했다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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