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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May 13. 2024

[한국의 신화]운명을 사로잡은 사람

*본 글은 명대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최근 SNS, 유튜브 등 인터넷 공간에서 심심치 않게 신점 후기를 볼 수 있습니다.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과거에 신점을 봤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로 일어났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댓글에는 점집 정보에 대한 문의가 쇄도합니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점에 관심이 많았을까 싶지만, 실은 아주 오래 이어져 온 문화입니다. 신분제가 있던 때에 사람들은 무당을 천하다며 무시하다가도, 막상 중요한 일이 생기면 무당을 찾아갔습니다. 또 20세기 초 과학적 사고가 유입되고 그 파장으로 미신타파 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왜 지성을 갖춘 신여성이 무지한 무당에게 자신의 미래를 묻느냐?’는 기사가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쉬쉬하면서도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점으로 불안을 달래왔던 겁니다.


가끔 저에게 신점의 신빙성을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신화 속 점괘들을 떠올리며 “글쎄요”라고 답합니다. 신화에서도 종종 점을 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리공주」에서 부모는 점을 보러 갔다가 올해는 운이 좋지 않으니 지금 결혼하면 딸을 일곱 낳을 것이고, 내년은 운이 좋으니 그때 결혼하면 아들 셋을 낳아 후사를 이을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를 듣습니다. 점괘를 무시하고 결혼을 감행한 부부는 딸 일곱을 낳고 좌절합니다.

「성주풀이」에서는성주신이 점괘로 부인이 납치당했음을 알고 부인을 구해냅니다. 이처럼 신화에서 점은 미래를 예견하고, 진실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문전본풀이」의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점쟁이를 매수해 일곱 형제를 죽여 간을 꺼내 먹어야만 병이 낫는다는 거짓 점괘를 말하도록 합니다. 점쟁이의 거짓 점괘로 인해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려합니다.

돈으로 산 거짓 점괘는 신화의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점을 보는 무당이 전승하는 신화에서 점이 거짓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 재미있지 않나요? 신화는 불안을 달래려 점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점괘 또한 분명히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점이 참이라 하더라도 그 운을 잡을 수 없다면 무용합니다. 대략적인 시기를 안다고 해서 무색무취에 형태조차 없는 운이 내게 왔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요? 


이쯤에서 제주도에서 전하는 신화 「삼공본풀이」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신화에는 ‘복덩이’ 가믄장아기가 등장합니다. 집안은 가믄장아기가 태어나자 번성했다가 부모가 그녀를 쫓아내자 다시 폭삭 주저앉습니다. 쫓겨난 가믄장아기는 이곳저곳을 떠돌다 삼 형제가 사는 한 집에 다다릅니다. 긴 여정에 지친 그녀는 하룻밤 머물기를 청하나 두 형은 온갖 꼬투리를 잡으며 문전박대합니다. 한편 착한 셋째는 가믄장아기의 고된 여정을 헤아리며 환대합니다. 또 가믄장아기가 감사의 뜻으로 평소 즐겨 먹는 음식을 내어놓자, 두 형은 이런 음식을 누가 먹냐며 구박합니다. 반면 셋째는 맛있게 먹습니다. 셋째의 친절 속에 마음이 싹트고 두 사람은 결혼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셋째가 마를 캐는 곳마다 황금 덩이가 쏟아져 나와 가믄장아기 부부는 순식간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가믄장아기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복이 따릅니다. 그녀가 꼭 복의 의인화처럼 느껴질 만큼 황금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가믄장아기를 내쫓고, 구박합니다. 그들은 그녀를 그저 버릇없는 딸, 혹은 신분도 집안도 모르는 미천한 낯선 사람 따위로 대합니다. 그렇게 이곳저곳에서 내쳐진 가믄장아기는 한곳에 정착합니다. 상대를 헤아리고,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고운 심성을 가진 셋째 곁에 말입니다.


운이 좋아도 실력이 따르지 않으면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 속 운은 꼭 성취에 관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삶을 이루는 수많은 것과 만나는 데에도 운이 필요합니다. 첫째와 둘째에게 기회가 있었듯, 운은 모두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운이 내 곁에 정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셋째의 미덕을 갖춰야 한다고 신화는 말합니다. 


만약 그해에 복덩이가 찾아올 것을 알았다면 두 형은 가믄장아기를 환대했을까요? 글쎄요. 잠깐 그러했다고 하더라도 가믄장아기는 이내 두 형의 실체에 실망하고 떠났을 겁니다. 그러니 불안이 찾아와 미래를 점쳐보고 싶을 때면 「삼공본풀이」 속 셋째를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찾아올 운이 영원히 내 곁에 머무르기를 바란다면 말입니다.



원문 출처: https://news.mj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2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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