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할 때 밥솥을 가장 먼저 들고 들어가야 하는 이유
저는 작년에 결혼을 하고 신혼집으로 이사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며 자취를 시작했고, 몇 차례의 이사를 스스로 해냈기 때문에 이사에는 도가 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신혼집으로의 이사는 꽤나 생소했습니다.
19살까지는 아파트에 살았음에도, 오랜 기간 원룸에 살았기 때문일까요. 방이 여러 개 있는 집으로의 이사를 앞두곤 엉뚱한 질문을 마주하곤 했습니다.
침실에는 침대, 옷방에는 옷장을 넣으면 되지. 그럼 거실에는… 뭘 두는 거더라…?
큰 가전과 가구를 사는 것도 처음이었어요. 그간 옵션으로 갖춰진 가전, 가구로 살며 느꼈던 아쉬움과 어느새 생겨난 나의 취향으로 모든 것을 골랐습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니 책장은 튼튼한 것으로 또 책상은 큰 게 좋겠어. 대신 옷방은 행거 정도면 되겠지?
십 년 넘게 혼자 살았음에도 자취방은 늘 임시거처 같았습니다. 1-2년이면 떠날 곳, 어차피 이사 갈 집. 그러니 그곳에서는 '오래 쓸 가구'같은 것은 사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마지막 몇 년은 종이로 만들어진 책장을 썼었고,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떠날 때 버리기 쉬우니까. 늘 마음을 떼어낼 준비를 하며 동네를 누볐습니다. 그곳에 이러한 마음으로 사는 것은 저뿐만은 아니었습니다. 원룸과 오피스텔이 가득했던 그 동네에는 언젠가 떠나려 하는 저와 같은 사람들뿐이었으니까요.
그러다 토박이들이 가득한, 오래된 동네에 신혼집을 구했습니다. 누군가는 일평생을 살았고, 남은 생을 살겠다고 다짐한 곳. 우리 부부가 이곳에서 몇 년을 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비로소 자취' 방'이 아닌 우리' 집'에 살게 된 것 같아 기뻤습니다.
몇 번이나 해봤음에도 이번 이사를 앞두고는 남다른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꾸린, 나의 집으로의 이사는 처음이니까요. 혹여나 하는 마음에 "이사를 할 때 해야 하는 것" 목록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이사 업체와 입주 청소 업체 고르는 법, 이사할 때 꼭 사야 하는 물건 등등의 틈에서 생각지 못한 정보를 마주했습니다.
‘이사할 때에는 밥솥을 가장 먼저 들고 들어가야 합니다.’
21세기에 이사 민속이 살아있다니?
옛날엔 불이 아주 귀했습니다. 가스와 라이터는 없고, 성냥도 잘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불은 늘 필요했죠. 밥을 짓고, 물을 끓이고, 난방을 하기 위해서는 불이 필요했습니다.
불은 부엌에 있었기 때문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부엌의 담당자인 며느리였습니다. 그런데 불을 지킨다는 게 쉬운 일인가요. 아차 하면 탈것이 다 떨어져 꺼지기도 하고, 바람이 불어서, 또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부러 꺼트리기도 했습니다. 아차 하다 불이 꺼지면 며느리는 옆집에서 몰래 불을 빌려와 그런 일이 없었던 척, 아닌 척했습니다.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소중히 다루었던 것은 비단 불을 피우기 어려워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이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의미 부여하기 아니겠습니까? 소중하디 소중한 불씨에도 의미가 있었으니, 바로 그 집안의 복과 기운이었습니다. 불이 꺼지는 것을 그 집안의 복이 날아가거나, 가족에게 큰 화가 일어 집안이 망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지금의 관점으론 그저 다시 살리면 될 불 하나 꺼트린 것이었지만, 옛사람들에겐 우리 집안이 망할 징조였던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불씨를 잘 관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며느리를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불씨를 잘 돌보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며느리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부엌에서 보내야 했을까요...?)
이사를 갈 때에는 불씨를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놀랍게도 가지고 갔답니다. 아무래도, 불은 그 집의 기운을 상징하니까요.
이 전통은 꽤나 오래 유지되었어요. 라이터나 성냥이 비교적 흔해진 80년대의 대도시에서도 이삿짐 차에 연탄불을 함께 가져가는 일이 꽤 흔했으니까요. 덜컹거리는 차에서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우리 가족이 잘 먹고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은 그 어려움보다 컸던 것이지요.
여기서 변화를 눈치채셨나요? 아궁이, 화로에서는 나무를 태웠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불을 피우는 재료는 변화합니다. 80년대에 불을 피우던 주 재료는 연탄이었으니까, 불과 연료인 연탄불로 불씨를 옮겼습니다.
밥솥 이야기를 하겠다더니 불 이야기를 오래 하는 게 의아하지요? 자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으로 밥을 짓지요? 전기 콘센트에 코드를 꽂고 취사 버튼을 누르면 밥이 완성됩니다. 인덕션에 냄비를 올리고 버튼을 누르면 순식간에 뜨거워집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지켜야 할 불씨도, 집안의 길흉화복을 상징할 불은 없습니다. 어디서나 편리하게 보급되는 전기와 가스가 있을 뿐이지요.
그럼에도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 기왕이면 좋은 일이 많았으면 하는 마음은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녹아들어 민속은 변화합니다.
과거에는 이사할 때 불씨와 함께 솥을 가장 먼저 들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불은 나쁜 걸 모두 태워버리는 힘이 있기 때문에, 불을 가장 먼저 들고 들어가는 건 공간에 머물고 있을 나쁜 것들을 없애고 정화합니다. (이사 전 호박을 굴리거나, 소금을 뿌리는 것, 혹은 성수를 뿌리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동시에 불은 그 집안을, 솥은 집의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에, 가지고 온 불을 넣고, 솥을 아궁이에 걸어 이사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불과 솥이 하나가 되어 '밥솥'이 된 후부터는 밥솥이 이 모든 상징을 흡수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제는 밥솥을 들고 들어가는 것이 집안의 운을 옮기는 일이자, 이사의 시작을 알리는 일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엔 불의 의미는 점점 줄어들어 밥솥을 가장 먼저 들고 들어가는 것은 '집안의 풍요'를 비는 것, 조금 더 요즘의 표현으로 바꾸자면 '우리 가족이 부자가 되게끔 해달라고 비는 것' 정도의 의미로 변했습니다.
잘 쓰던 밥솥이 고장 난 다고 "우리 집이 거지가 되려나 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삿날엔 '손 없는 날'을 한 번쯤 찾아보지 않나요? 제가 이번에 그랬거든요.
예전엔 잘 사는 것에 대한 별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낸다면 나에겐 부귀영화가 뒤따를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니 꼭 그렇지 않더군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가능성이 없지만, 노력한다고 결과가 꼭 따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운이 필요할 때가 있더군요.
괜히 그 실력 있는 오타니 선수가 운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것이 아니구나... 했어요.
이러한 마음으로 사람들은 이사를 앞두고 손없는 날을 찾아봅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삶이 조금이라도 덜 험난하길 바라면서요. 이삿짐 중 가장 먼저 밥솥을 들여 놓으며 바랍니다.
'이 집에서 사는 나날이 조금 더 풍요롭기를 바랍니다.'
경제 공동체이자, 질병 공동체이자, 운명 공동체인 저의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나의 성실한 하루와 함께 운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럴 때면 지긋이 밥솥을 바라보곤 합니다.
불씨를 관리할 필요는 없으니 배달 음식 줄이고 자주 밥 해 먹을게요. 어떻게, 저희 집안의 운을 조금 더 올려주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