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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Jul 18. 2021

배틀_그라운드

병원의 또다른 기능

또 시작됐다.

어머님들의 배틀이.


어머님들의 배틀, 베틀 아니고 배틀이다.

병원에서는 모르는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친화력이 누구에게나 열리는 것 같다.

우연히 옆자리에서 일정 시간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아픔을 공유한다.


나는 그걸보고 '불행 배틀' 또는 '병원 배틀'이라고 부른다.

그 내용들이 대부분 '내가 얼마나 더 많이 아픈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다.


지금 어디가 아파서 왔는데, 이걸로 얼마나 많은 병원을 다녔는지에 대한 배틀이 1차라면,

그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은 그에 질세라 '나도 병원 많이 다녔다'며 오늘 아파서 온 부위와 다른 부위를 나열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서로 '잘 낫는 병원'을 공유하기 시작하고, 연락처까지 주고 받는 경우도 많다.


속으로 '아니 어떤 사람인줄 알고 연락처를 주고 받지?'라는 생각이 든다.

한시간도 아니고 길어야 30분정도 그것도 누워서 치료받으면서 몇 마디 주고 받는데? 

그만큼 절실하겠지라는 생각도 들고.


또 다른 배틀은 '자식자랑 배틀'이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의 대부분 자랑은 자식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이제 손주까지 있는 대다수의 어르신들에게 유일한 낙일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어머님들의 자식자랑은 끝없이 이어지는데,

아들이 공무원 또는 며느리가 공무원이나 큰 회사에 다니시는 분들의 목소리가 크다.

또 작은 회사에 있더라도 '서울'에 있는 자식을 가지신 분들도 데시벨이 높다.

지방에서는 아무래도 '서울'과 '아들'이 아직도 큰 주요 자랑 포인트인 것 같다.


어느 어머님은 '아들'이 '학교선생'인데, '과학고'인지'영재고'인지에서 근무하다가 

얼마전에 이 곳으로 전근을 왔다고 포인트를 주신다. 그러면서 출근하면서 병원에 데려다주고 갔다고, 그래서 병원 문 열리기 전에 도착했다하신다. 아들이 자주 '교장'과 '교감'이랑 술도 마시고 한다고 늦다고 하시면서 '교장 딱까리 아이가'라는 말을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신다.


그래 칠순 자식한데 아흔넘은 부모가 차조심, 길조심하라고 이르신다고,

부모에게는 아무리 나이가 많고 어떤 일을 하든지 사랑스러우시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자식자랑 배틀을 하셔도 그러려니 하고 듣게 된다.



아이가 어릴 때, 아이가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주로 하는 이야기들은 아이이야기, 아기용품 이야기 등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이야기소재가 떨어지면 누군가가 남편이야기, 시댁이야기를 시작했고 

거기서 온갖 자랑과 질투와 험담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모이면 그랬던 것인지,

육아서로 유명한 <불량육아>의 저자 김선미는 '엄마들끼리 모여서 불행배틀 좀 하지마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그때 느꼈다. '아, 불행배틀' 그랬구나. 내가 더 불행해!라고 말하기 위해서 모인자리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고 있는 자신을 느끼게 되었다. 그 때 '불행배틀'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고, 그런 불행배틀은 아기 엄마들 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하고 있다는 것도 내 주변 세상을 둘러보며 느낄 수 있었다.


병원도 그 중의 한 곳이었다.

특히나 병원의 특성상 아픈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이 불행배틀은 날개를 달 수 있는 곳이었다.

'아픔=불행'이라는 공식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기도 하다.

아픔이 불편함이기도 하지만, 그런 불편함 때문에 행복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불행이 맞을 수도 있겠다.



"삐삐빅, 삐삐빅..."

한창 아픈 것에 대한 '불행 배틀'을 하고 있는 자리에서 기계가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 기계를 끄고, 어머님들의 몸에 붙은 전기 패드들을 제거한다. 간단하게 약도 발라드리고 닦아드리는 동안 어머님들은 말씀하신다.


"아가씨도 젊을 때 몸관리 잘해라잉~ 나중에 나 들어가(나이 들어서) 고생하지 말고"

"하모(맞아)"


어머님들 눈에는 아직 '아가씨'인 나도 아픈데가 많다는걸, 어머님들은 모르실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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