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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Aug 19. 2021

다른 직업 평가하기

내가 모르는 세상을 단언하지 않기

특수교육과에 가고 싶었다.

교외 수상 경력을 내세워 모자란 점수를 보완해보려 했지만,

그 문턱은 내게 높았다.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물리치료과였다.

주변에서는 4년제 다른 과에 가면 될 것을 전문대학에 간다고 뒷말이 많았다.

누구보다도 담임선생님은 아쉬워하셨고, 나는 모른척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못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대비하고 차선책을 준비하지 못한 내게 화가 났고, 

아무 뜻도 없이 점수만 맞춰서 다른 과에 진학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친구의 친언니가 인근 학교의 물리치료과에 재학 중이었다.

친구인 동생에게 '네가 공부만 좀 더 잘하면 우리 과에 오라고 할 텐데'라고 했다고.

"물리치료과는 뭐하는데야?"

그때부터 물리치료과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졸업 후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엄마는 간호대학에 가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물리치료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뭐 그것도 괘 안치, 여자가 하기에는.'이라고 하셨다. 엄마가 봤던 물리치료사의 업무 강도는 그냥 '쉬운' 수준이었다고.




일을 시작한 지 2~3년 차 정도 되었을 때인 것 같다. 

우리 병원 인근에 있는 슈퍼 사장님이 치료를 받으려 왔다.

그분의 증상은 그리 심한 정도가 아니라 기본 치료 3개(온열치료, 전기치료, 심층 열치료- 쉽게 말하면 핫팩 찜질, 전기, 초음파)가 처방이 내려왔다.


핫팩, 전기치료가 끝나고 초음파 치료를 하기 위해 3분간 환자와 붙어 있어야 했다.

아마도 손목이나 상지 쪽이었던 것 같다. 환자의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상황이었으니.

그 슈퍼 사장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물리치료 일하기 참 편하제? 전기만 띡띡 붙이면 되고. 할 일 뭐 있나?"


한 대 때릴걸. 

그 입 다물라 말할걸. 


나중에 그 이야기를 실장님께 일러바쳤다. 

"세상에 저 슈퍼 아저씨가 쏼라쏼라~ 일 편하다고 막 어쩌고 저쩌고~"


실장님도 한층 높아진 말투로 

"'그럼 슈퍼에서 일하면 뭐 할 일 있어요? 손님이 가져온 물건 계산만 삑삑 해주면 되지?'라고 하지 그랬어? 참, 사람들 남의 일은 정말 쉽게 생각하고 말한다니까."


내가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고 난 후부터, 엄마는 '물리치료 일 편하다'는 말이 쏙 들어갔다고 했다. 매일 운동치료에 지쳐서 돌아오는 딸을 보니 그 말을 할 수 없었던 거다. 엄마는 '이럴 줄 알았으면 임상병리과에 가라고 할걸.'이라고 하신다. 나는 '엄마, 거기라고 편하기만 하겠어? 다 안 보이는 뭔가가 있을 거라고.'




사실 지금도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사람이 많다. 

그나마 2~3년 차 때보다는 상처를 덜 받고, '반사'하는 내공이 생겼을 뿐이다. 


나도 겪어보지 못한 직종에 대해서 얼마나 쉽게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지,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연예인들의 회당 출연료가 화제가 되면 '와~ 한 번 출연하고 저렇게 돈을 받아가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고, 

광고를 얼마에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 번 찍는데 장난 아니구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외모를 유지하고 프로그램을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뒷모습을 보게 되면서

'세상에 공짜는 없구나'를 실감한다. 


책이나 매체를 통해 내가 겪어보지 못한 직종에 대한 이해를 하고 말을 아끼려 노력한다. 

요즘 각종 직업을 가진 분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고 있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 <임계장 이야기>, <대리 사회>,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 그 직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아, 이런 고충이 있구나, 이런 특징이 있구나.' 또는 '이런 재미가 있겠네?'라든지.



여전히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제 이렇게 주문을 건다.

'저 사람은 부러워서 저렇게 말하는 거다. 부러우면 지는 거랬지. 저 사람은 나한테 졌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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