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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Dec 04. 2021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갑질인가 눈치인가

10년이 훨씬 넘게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간 지나 온 병원도 여러 곳이다. 지역도 다르고 규모도 다르다. 

나를 비롯한 동기들과 선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너의 마인드에 따라 근무환경이 천차만별이다. 5인도 채 안 되는 (그래서 법의 테두리 안에도 못 들어가는) 소규모 사업장부터 병원급, 종합병원급의 대기업 수준까지. 사실 큰 병원에 들어갈 수 있는 수는 제한적이다. 누구나 삼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대부분은 병원급, 요양병원이나 의원에서 일하는 수가 많다.


따뜻한 남쪽나라에 사는 내게도 올해의 영하권 기온이 찾아왔다. 겨울 하면 호떡이나 군고구마 같은 겨울철 간식이 생각나지만 아무래도 붕어빵에는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 오죽하면 '붕세권'이라는 말이 나오며 붕어빵을 파는 곳을 알려주는 어플까지도 나왔으니 말이다.


붕어빵 하면 생각나는 사모님이 있다. 원장님과 더불어 짠 부부로 소문난 분이다. 원장님은 얼마나 짠지 점심을 지어주시는 이모님이 고춧가루를 혹여나 개인적으로 가져갈까 봐 원장실(진료실 내에 원장님이 쉬는 공간) 안에 보관했다. 이모님은 매 끼니때마다 원장실에 들어가서 쌀과 고춧가루 등을 퍼와야만 했다.  점심시간에 환자 대기실에 사람이 없다고 병원 불이며 TV도 다 꺼놓으라고 하셨다. 진료시간보다 조금 빨리 병원에 오신 분들은 '병원 안 해요?'라는 질문을 하실 정도였다. 직원들이 TV는 끄고 대기실 불이라도 켜놓자고 겨우 원장님을 설득하기도 했다.


그런 원장님 곁에 있는 사모님은 병원 안에서만 돈을 아끼는 분이었다. 느지막이 병원에 와서 물리치료를 해달라 하시며 하는 말이 '노니까 더 바쁜 거 있지~~ 호호호'라며 직원들의 염장을 지르는 게 특기였다. 치료실에서 초음파 할 때 앉을 의자가 필요하다고 하니 사모님이 '큰맘 먹고' 의자를 백화점에서 사 왔다고 했다. 치료실의 생태를 모를 뿐 아니라 일을 해본 적이 없는 그녀는 백화점에서 7만 원이나 주고 의자를 사 왔다. 그 의자를 보자마자 우리는 실소를 터트렸다. 나중에 사모님이 와서 의자가 어땠는지 물으셨고 우린 '겨우 엉덩이 하나만 걸쳐지는데요'라는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흔히 포차에서 앉을 때 쓰는 그런 빨간색,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였고 그걸 이야기했는데도 거금 7만 원을 주고 의자를 사 온 것.

문제의 7만원짜리 의자

그런 그녀가 병원에 올 때마다 하는 일이 또 있었다. 바로 '직원들 간식 얻어먹기'였다. 사실 사모님들이 병원에 와서 회계를 보거나 하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직원들 격려를 한다거나 본인 볼일만 보고 가는 일이 많다. 하지만 우리의 그녀는 항상 직원들이 일하는 자리에 와서 '먹을 거 있음 나눠먹자'라고 했다. 다른 병원에 일하는 친구를 잠시 만나러 갔을 때 탕비실에 과자가 잔뜩 쌓여있길래 '누가 이렇게 많이 사다 놨어?' 했더니 '사모님이 오실 때마다 직원들 먹으라고 많이 사 오셔.'라고 했던 게 갑자기 생각난다. 


그날도 이렇게 추운 겨울이었다. 여직원들끼리 먹으려고 근처에서 붕어빵을 한 봉지 사 왔다. 사모님이 오신 기척이 있어 얼른 붕어빵을 데스크 밑으로 숨겨놓고 인사를 했다. 사모님은 우리에게 대뜸 '맛있는 냄새가 나네. 뭐 먹고 있어?'라고 했다. 우린 '아무것도 없는데요?'라고 했더니, '맛있는 거 있음 나눠먹자~'고 소름 돋는 말을 했다. 우린 '밖에 가보세요.'라고 공을 던지고 사모님은 진짜 바깥 데스크에 있는 직원들에게 '맛있는 거 있음 나눠먹자'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붕어빵(출처, 픽사베이)

80이 넘는 노모와 함께 병원에서 치료받으면서 '엄마 요즘에 편의점 도시락이 진짜 잘 나오더라. 그거 한번 사 먹어봐.' 80 넘는 할머니께 편의점은 무엇이며 사드릴게요가 아닌 사 먹어봐는 또 뭐람. 그런 철없는 그녀다. 찬바람이 불어오고 붕어빵이 생각날 때면 문득문득 그녀가 생각난다. 벌써 그 병원을 그만둔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유난히도 별났던 사모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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