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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Feb 12. 2022

병원이란 대리 사회

여기에도 있어요

같이 일하는 동료는 결국 시어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됐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간 치매가 있지만 아래층, 위에 살면서 돌보고, 가까이 사는 시누가 낮에 돌봐준 덕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저작 기능이 떨어져 아주 묽은 죽만 드셨던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가니 바로 영양 줄을 꽂을지 물어보더란다.  가족은 거절하며 그래도 식사는 입으로 드시게 해달라고 하 입원 수속을 마쳤다고 했다.

 

이 가족은 그나마 아들 가족이 위층에 살고, 어머니를 도울 수 있는 아버님도 계시며, 근처에 사는 딸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여럿이서 돌볼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어머니는 먹는 것도 그렇지만 대소변 처리가 안되고 인지기능이 더 떨어져 협조가 불가한 상태가 됐지만 집에서 돌봄이 가능했던 일이다.


이번 달 독서 모임의  선정도서는 김민섭 작가님의 <대리 사회>다. 책에서는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 하기 어렵거나 귀찮은 일을 타인에게 대가를 주고 대신하게 한다.'(대리 사회 241p)

김민섭 <대리사회>

최근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국가고시를 한번 경험한 병원 종사자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내용이라 하여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공부해보니 어려운 건 둘째치고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대신해주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시간당 금액이 물리치료사보다 많은 이유가 있었다. <대리 사회>를 읽으니 알겠다. 결국 요양보호사도 누군가의 역할을 '대리'해주는 거라고.


큰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도 마찬가지다. 간호사의 업무를 보조하기 위해 고용하는 간호조무사는 큰 병원에서는 잡다한 업무를 맡는다. 퇴원한 환자의 침대 시트를 새것으로 갈거나, 움직일 수 없는 환자의 기저귀도 갈아준다. '간호'업무의 대리 사회다.

(그래서 많은 간호조무사들이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병의원급에 많이 종사하기도 한다.)


물리치료사인 나는 어떤 일의 '대리'일까 생각을 했다. 물리치료사는 항상 주체적인 느낌이 강하다. 다른 의료기사 보다 자존감이 높다. 온전히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물리치료사가 많은 것도 그 자존감에 한 몫한다. 그런데 일반 물리치료실에 일하는 나는 어떤 일의 '대리'라는 생각이 강하다. 어찌 보면 의사의 대리, 어떨 때는 환자의 대리 같다.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해줘야 하는 의사의 대리로 의사가 처방해준 치료를 해준다. 환자의 대리로서는 혼자서 만지기 어려운 부위를 대신 치료해주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도수치료를 하지 않으니 이런 '대리'역할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 같다. 그래서 도수치료를 하는 물리치료사들의 프라이드가 훨씬 강하다.


김민섭 작가는 대학을 떠나 세상으로 나오면서 많은 곳의 '대리'들을 이야기한다. 청소노동자, 밤에 공사하는 분, 대리기사, 심야버스 등의 노동이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수많은 대리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대리기사에게만 '대리'라는 말을 붙였지만, 학습지 교사나 학원도 대리. 종교인도 대리, 세탁소도 대리, 음식점도 대리다. 내가 돈을 지불하고 나의 편리를 사는 일이다. 요양보호도 마찬가지다. 가족이 환자나 노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기에 돈을 지불하고 돌봄을 대리시킨다. 나는 대리 사회에서 대리를 맡았구나 싶다. 주체적으로 사는 삶이라 생각하지만 언제든 대리가 되고, 또 남에게 대리를 시킨다. 책에서 작가님이 말하는 대리 사회가 병원에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곳에도 대리가 있어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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