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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Aug 18. 2021

40대 여자 물리치료사

로 살아간다는 것은

복지관에 일하는 한 선배는 수년 전, 물리치료사 보수교육 등록을 하러 갔다가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수 백 명이 오는 곳이라 면허번호 순서대로 명단에서 본인 확인을 하고 입장을 하는데, 그 선배가 면허번호를 불러주니 그 스텝이 하는 말,

"오래 하시네요?"


그 이후로 그 선배는 오프라인으로 하는 보수교육에는 '못 가겠더라'며 온라인 보수교육을 듣는다고 했다. 덧붙여 선배는 내게

"야, 나랑 비슷한 면허번호가 없는 거야. 내가 그렇게 명단 앞에 있는 줄 몰랐다. 내 앞뒤로 동년배들이 다 어디 간 거야?"




물리치료사는 여성의 비율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간호사만큼 압도적인 건 아니지만, 7~80%가 여성이다. 또한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치료사도 여성의 비율이 많은 편이지만, 연령은 20대부터 30대 초반이 가장 많다.

그럼 그 나머지 인원들은 다 어디 간 걸까.


시내 중심부의 병원에 가보면 많은 수의 치료사들이 남자다. 그쪽에서는 남녀의 비율이 반대로 남자 치료사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내 중심부의 내로라하는 병원들은 물리치료실에서 도수치료 등 특수치료를 중심으로 한다. 여자 물리치료사도 도수치료를 하지만,  남자 물리치료사를 선호하는 편이다. 도수치료를 하는 여자 물리치료사는 많지만 적다.


졸업 후 많은 교육을 듣고 수료했다. 정형외과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쪽 관련 교육을 많이 듣게 되었고, 결국 신경계 쪽으로 들을 기회가 줄어들었다. 동기들은 가끔 서른이 넘어 학회에 나가보면 얼굴도 모르는 후배들 틈에 끼여 교육을 들을 자신이 없다고도 했다.

점점 연령에 밀리고, 연차에 밀리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예전 병원에서 함께 일했던 실장님은 50이 넘었다. 실장님이라면 무조건 남자만 연상하던 사회 초년생이던 내게 새로운 시선을 주신 분이다. 나보다 훨씬 오래도록 이 바닥에서 일하셨고,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실장님은 병원 규모가 커지면서 더 많은 도수치료를 하게 되고, 더 많은 후배 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다.


반면에 함께 일했던 다른 선배와 나, 내 동기들은 대부분 동네 의원에서 일하고 있다. 나를 제외하면 거의 다 시 외곽에 있거나 촌에서 일한다. 흔히 말하는 '나 홀로 실장'이다. 그냥 혼자 일한다는 말이다.


혼자 일하는 곳은  함께 일하는 치료사가 없으니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손발이 안 맞아서 고생하는 것보다 혼자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다.


단점은 내가 아프거나 자리를 비워야 할 상황이 생길 때 대타를 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잠시 일을 쉬고 있을 때 선배나 친구의 병원에서 대타로 일을 많이 했다. 아이 유치원 재롱잔치에 꼭 가야 하거나, 아파서 자리를 비울 때가 그럴 때였다. 그렇게라도 대타가 구해지면 다행이지만, 시간은 다가오는데, 사람이 안 구해지면 그것만큼 속이 타는 일도 없다.



내가 20대 치료사로 일할 때는 40대 치료사는 남자만 보였다. 40대 정도 되는 여자 선배들은 대부분 큰 병원에 있는 분들이었고. 그때도 궁금했었다. '선배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동기 중 50%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나와 친구들이 나머지 50%의 주축이 되지 싶다. 다른 직업을 갖거나 아이를 키우는 일에 집중하는 친구들이 많은 이유다. 여자가 많은 과 특성상 그렇게 여자 물리치료사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다.


또 하나의 이유는 병원에서 나이 많은 여자 치료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장을 맡은 사람보다 더 적은 나이를 선호하는 편이라 그렇게 탈락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게 나이에 밀리게 된 치료사는 또 시 외곽으로, 촌으로 가게 된다.




이제 나도 '40대_여자_물리치료사'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수명이 짧은 '40대_여자_물리치료사'로 끝을 생각하는 날이 종종 있다.  언젠가는 물리치료일을 하지 않을 때가 올 거라 생각한다. 그것이 나이 든, 해고든, 자발적이든 어떤 것이 든 간에.


그때를 대비하려고 한건 아니지만,

퇴근 후에는 다른 일을 한다.

글쓰기나 여러 프로젝트 운영 등.

아직은 커피값 정도, 책 몇 권 사보는 수준의 미미한 수익이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그것이 내 인생의 2막을 열어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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