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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Aug 08. 2021

털 뭉치가 갑자기 움직였다.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같이 오면 안 돼요

접수하는 곳이 요란하다.

우리 병원에 온 기록이 없는데, 환자는 계속 예전에 왔었다고 주장한다. 결국 초진환자로 등록되어 진료실로 들어간다.


5~60대로 보이는 커플이다.

부부인지, 연인이지는 모르겠다. 여자분이 먼저 들어와서 나중에 들어올 남자랑 꼭 같은 방에 넣어달라고 한다.


치료실이 남자, 여자로 구분되어 있어서 안된다고 말씀드렸지만 계속 우긴다. 나도 안된다고 우긴다. 결국 여자분은 다른 여자 환자 옆에 있는 침대에 눕는다.


말했던 남자분이 들어온다. 그도 역시나 같은 방에 넣어달라고 한다. 나도 다시 안된다고 말씀드린다. 보통 부부들은 이렇게까지 같이 넣어달라고 하지 않는데, 좀 수상하다.


아무튼 여자분에게 먼저 핫팩을 해드린다. 허리가 아프시니 핫팩을 허리 밑에 깔고 누우시라고 말씀드렸다. 가지고 오신 가방을 치우지 않고 그 위에 누우시려고 하신다.


"가방은 침대 밑에 넣어두는 데가 있으니 거기에 두시면 돼요."


가방 위로 삐죽하게 털 뭉치가 보였다. 회색 털 뭉치였는데, 연일 35도를 넘는 요즘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혼자 궁금증이 생겼다.

'뜨개를 가지고 다니면서 하시나?'

'색깔도 짙은 회색인데, 저걸로 뭘 만드시는데 가지고 다니시지?'


그런 생각에 잠시 잠겨있는데, 갑자기 그 회색 털 뭉치가 움직인다!! 움직이는 털 뭉치에 있는 눈알이 나를 쳐다본다. 내 눈과 마주친 그 회색 털 뭉치는 바로 푸들이었다!!


오 마이 갓!


병원에, 그것도 다른 사람이 있는 치료실에 개를 데리고 오는 걸 나는 누구보다도 싫어한다. 아니 경악하는 수준이다. 기본 상식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이 들고, 그런 사람은 병원에 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는 동물병원에나 데리고 가야지.


"악, 어머니 이게 뭐예요? 개를 데리고 오신 거예요? 병원에 개를 데리고 오시면 어떡해요?!!"

"아니, 얘가 차에 안 있으려고 해서... "

(이 더운데 개가 차에 있는 것도 말이 안되지)

"아버님이랑 번갈아 치료를 받든가 하셔야죠. 치료실까지 데리고 오시면 어떡합니까?"

"아고, 죄송하게 됐어요. (개를 보며) 야, 니 때문에 내가 못 산다 아니가~"


(같이 온 남자를 크게 부르며)

"오빠~~ 빨리 와서 얘 좀 데리고 가라."

"나도 치료받고 있는데? 간호사! 저 사람 여기 내 옆으로 오게 해 주이소."


와~ 치료실에 둘만 있냐고, 안 된다고 다시 말씀드린다.

그 털뭉치는 실버 푸들이었다. (출처 픽사베이)


지금까지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개를 데리고 온 환자가 또 있었다. 언제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는 강아지 이동가방에 넣어오신 젊은 분이셨다. 강아지 가방을 발치에 두고 개를 안심시키며 치료를 받았었다. 강아지는 치료받는 내내 낑낑거렸고, 결국 온전히 치료받지 못하고 나가야 했다. "다음에 강아지는 두고 오세요."


그날 이후로 강아지를 데리고 온 분은 처음인 것 같다. 내 성격상 일하는 곳에서 공사 구분을 명확히 하는 편이라 더 용납이 안 가는 일이었다. 다행히 이번 강아지는 낑낑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푸들이 영리하다 하더니 눈치를 보는 건가 싶었다.


온전한 시간대로 치료실에 머무르게 할 수 없어 빨리 치료를 해드렸다. 치료시간도 최소한으로 짧게. 그러는 동안에도 아까 그 털 뭉치와 눈이 마주쳐 놀란 가슴은 진정이 안되었다.


치료할 때도, 치료가 끝나고 나가실 때도 다시 한번 말씀드렸다.

"어머니, 병원에 개를 데리고 오시면 안 됩니다. 꼭 집에 두고 오세요."


그 특이한 커플이 나가고 나서 강아지가 있었던 곳의 침대 시트와 베개 커버를 싹 갈았다. 살균할 때 쓰는 스프레이를 뿌려 혹시나 모를 개 냄새도 지워냈다.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 <세상의 나쁜 개는 없다>가 있다. 이번에도 왔던 그 개가 나쁜 건 아니다. 데리고 온 그 주인이 문제인 거지.


나도 강아지를 싫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물이 들어가선 안 되는 곳이 있기 마련.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사람이 아닌 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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