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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Mar 12. 2022

어머니는 반장선거가 싫다고 하셨어

엄마 속도 모르고

늦은 시간, 올해 중학생이 된 딸이 잠을 자지 않고 뭔가를 하고 있다.

"이거 적어가야 해."

뭔가 봤더니 학급 반장선거에 입후보한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공약 작성지다.

최대한 친구들의 '민심'을 잘 파악해서 적어보라고 했다.


초등학생 때도 학급 반장선거와 전교 회장 선거에 나갔던 아이다.

한 번도 된 적은 없지만, 1년에 한 번씩은 꼭 선거에 나가본다. 

되든 안되든 상관없고, 그렇게 해보는 게 재밌는지 유난히 같은 학년에선 입후보자가 많다.

욕심이 많은 또래 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급 회장과 부회장을 뽑았다. 나는 2등을 해서 부회장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그 소식을 엄마에게 알렸을 때 엄마는 "내일 가서 물려라."라고 하셨다.

속상했지만 엄마가 단호하셨기에 다음날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친구들이 너를 뽑아줬고, 친구들과의 약속인데 이유도 없이 그건 안된다."라고 하셨고,

그렇게 한 학기 동안 학급 부회장을 맡았다.


4학년이 된 3월에도 나는 학급 임원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또 반대다. 

2학기가 되어서 엄마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고 학급 임원이 됐고, 6학년 때도 마찬가지로 엄마 몰래 학급 임원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학급 임원이 된 것은 중3이었다. 중학교를 떠나기 전에 한번 해보고 싶었고, 솔직하게 반장선거에 임하는 목표를 친구들에게 발표했다. "중학교 떠나는 마당에 반장 한 번 하고 싶어요." 그리고 부반장이 됐다.


커서도 자꾸 반장선거에 나가는 나를 보며 엄마는 참 안타까워했다.

"니가 자꾸 반장 같은 걸 하면, 없는 형편에 부담이 된다."

문제는 돈이었다.

당시 학급 임원을 하게 되면 엄마들이 자연스레 어머니 임원이 됐다. 그 엄마들 중에서 전교 어머니 회장이 나오기도 하고, 십시일반 모아서 학급 운영이 수월해지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환경미화 시즌에는 교실마다 화분이며 장식을 해줬고, 운동회나 스승의 날, 어린이날 등 행사 때는 학급에 간식을 넣어주곤 했다. 일일 교사가 필요할 때는 누구보다도 먼저 와서 엄마들이 그 역할을 해주었고, 소풍이나 견학 때 따라가서 선생님 도시락 등 먹을거리를 챙겨주기도 했다. 학급 위원이 되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다 감안한 일이라는 걸 나는 알면서도 모르고 싶었다.


중3 때는 나도 머리가 좀 굵어졌다고, 사실 그대로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사실 엄마는 청소일을 하시고 동생도 많고, 형편이 좋지 못해서 엄마가 학교에 오실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이해해주셨다. 선생님도 시골에서 6남매 중에 중간에 있는 딸이 박박 우겨서 대학까지 나와 선생을 하기까지 힘든 과정이었다며, 내게도 어려운 환경이지만 너무 동생들만 챙기지 말고 네 것도 챙겨가며 공부하라고 하셨다. 졸업할 때는 부반장이라는 직함 때문인 것도 있었지만 봉사상과 장학금도 주셨다. 


초등학생 때 같은 학급 위원으로 일했지만, 유난히 엄마가 자주 오며 어머니 회장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임원이 아닌 학생과는 대놓고, 임원인 학생들과는 은근히 차별을 하던 6학년 때 선생님이 기억난다. 그 당시 나는 그런 차별을 겪으면서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나는 무조건 어머니 회장을 할 거야!'라는 다짐을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딸은 "엄마, 내가 회장 되면 엄마는 어머니 회장 할 수 있어. 엄마 꿈을 이루게 해 줄게!"라고 호기롭게 회장 선거에 나갔던 아이다. 그러는 아이에게 지금은 "아니야, 마음만 먹으면 어머니 회장은 할 수 있는데, 내가 귀찮아서 안 하는 거지."라고 웃으며 말한다. 


다행인 것은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할 때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더 이상 학교에 빈손으로 가는 걸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엄마들이 고민하던 선생님 선물이 사라졌다. 천혜향이며 화장품이며 상품권이며 모든 게 필요 없어졌다. 


내가 어릴 때 김영란법이 있었다면 우리 엄마는 내게 반장선거를 나가라고 적극 밀어줬을까?

그런 부담 없이, 눈치 없이 반장선거에 나가보면 어땠을까.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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