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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Jun 01. 2022

엄마표 팥빙수

그 맛은 어디에도 없을

지금같이 밖에서 못 사 먹는 음식이 많지 않을 내 어릴 적엔, 엄마표 디저트가 많았다. 빵을 좋아하는 엄마는 압력밥솥으로 카스텔라를 종종 만들어주셨고,

식혜와 미숫가루에 얼음을 동동 띄워 주시기도 했다.

엄마가 해주신 디저트 중 단연코 1위는 바로 팥빙수다.


팥빙수는 시장에서 팔았다. 길거리 음식으로 여름에 나온 신상 음식이었다.

이전에는 길거리 여름 특미가 미숫가루나 식혜 정도였다면,

어느 날부턴가 큰 얼음을 끼워 얼음을 갈아주는 쇄빙기가 등장하며 팔빙수를 팔았다.


엄마는 가정용 쇄빙 기를 사 오시고 팥을 삶았다.

"우리 팥빙수 해 먹자."라는 말이 정말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많은 양의 얼음을 밤새 얼렸다. 엄마는 삶은 팥과 미리 사온 우유와 연유, 토핑용 젤리와 떡도 사다 놓으셨다.


학교를 마치고 더운 오후가 되면 엄마는 하나씩 세팅했다.

엄마가 얼음을 가는걸 처음엔 한참 구경만 하다가 그다음부터는 서로 얼음을 갈아볼 거라고 나섰던 기억도 난다. 큰 양푼에 얼음을 가득 갈고 거기에 우유를 조금 붓고 팥과 연유, 젤리와 떡을 뿌리고 나면 그럴듯한 팥빙수가 됐다. 가족은 모두 양푼을 가운데 두고 둘러않았다. 밥숟가락으로 얼음과 팥을 골고루 섞어서 입에 가져가기 바빴다. 매년 이런 엄마표 팥빙수는 여름마다 만날 수 있었다.


얼음 가는 칼날이 무뎌져 기계를 여러 번 바꾸기도 했다. 그만큼 자주 먹었고, 우린 그 맛을 좋아했다.

고1 때 친했던 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때도 엄마는 엄마표 팥빙수를 내주셨다. 친구는 후에 말하길, 문화적 충격이었다고 했다. 큰 양푼에 그렇게 많은 얼음을 갈아 팥빙수를 만드는 것도 신기했고, 그걸 다 먹을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맛이 좋았던 것도 그랬단다. 친구는 아주 가끔 한 번씩 그때를 이야기한다. 그럴 때면 나도 잊고 지냈던 엄마표 팥빙수가 생각난다.

이젠 사 먹는 빙수/ 그때 그 맛은 어딜 가도 없다

최근에는 남편이 쇄빙 기를 사 와서 아이들에게 아빠표 팥빙수를 해줬다. 믹서기처럼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얼음이 갈리는 기계다. 나 어릴 땐 직접 돌려가며 얼음을 갈았는데, 그 손맛도 참 재미있었는데. 그런 재미를 아이들은 알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남편이 만들어준 팥빙수는 엄마표 팥빙수와 그 맛이 현저히 다르다. 맛있다는 재료들을 사 와서 넣고 빙수를 만들지만, 이상하게도 기억 속에 있는 음식은 더 맛있었다는 기억의 오류인가. 추억의 음식은 다 맛있었다는 내 기억의 오류. 아니, 불변의 진리다. 엄마표 음식이 맛있었다는 것은.


빨라진 여름, 카페마다 빙수를 일찍 내어놓았다. 팥을 싫어하는 아들을 위해 망고빙수를 주문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옛날 팥빙수'라고 적힌 메뉴인데. 아들이 원하니 어쩔 수 없다. 과일빙수는 아무래도 심심하다. 엄마가 맛있게 삶아 준비한 달짝지근한 팥을 듬뿍 올리고, 연유를 몇 바 씩 돌려 뿌려야 하는데 말이다. 쫀득쫀득한 젤리와 떡은 씹는 재미도 있고. 그런 맛을 다시 느끼지 못하니 참 아쉽다. 가끔 엄마에게 이야기한다. 엄마가 만들어준 디저트들이 참 맛있었다고. 맛있는 옛날 팥빙수를 파는 곳을 알아두었다가 엄마와 함께 가서 먹어야겠다. 그러면서 옛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시간도 가져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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