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마지막 이야기
시대별 석탑의 특징, 고려시대 마지막 이야기
앞 선 글에서 우리는 고려 석탑이 여러 양식이 뒤섞여 발전했던 ‘역동적인 겹침의 시간’이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 혼재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신라와 달리 고려 시대에는 지방 호족 세력이 성장하면서 석탑 건립에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지역적 특색이 반영된 여러 형식의 석탑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충청·전라도 지역에는 백제계 석탑이, 경기·경상도 지역에는 신라계 석탑이, 그리고 평안도와 강원도 일대에는 고구려계 석탑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의 석탑 위에 각 지역의 특색이 덧입혀지면서, 고려 석탑은 지역 기반의 다양한 양식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고려 시대 석탑은 크게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고려 고유 양식, 그리고 특수 양식의 다섯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앞에서 고려 고유 양식과 특수 양식 석탑을 살펴보았으므로, 여기서는 고구려계, 백제계, 통일신라계 석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가 보고자 한다.
(1) 고구려계 고려 석탑
먼저 살펴볼 것은 고구려계 석탑이다. 고려 석탑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다층·다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의 목탑 전통과 마주하게 된다. 다만 고구려의 옛 영토가 현재 북한과 중국 지역에 걸쳐 있어, 우리가 직접 그 실물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중심으로 조성된 고구려계 석탑들은 일정한 군을 이루며 분포하고 있으며, 모두 팔각형 평면을 기본으로 한다. 이 팔각 평면은 기단부에만 국한되지 않고 탑신부에 이르기까지 전 부재에 적용되어 있다. 층수 역시 5층, 7층, 9층 등 다양하게 조성되어 ‘팔각다층석탑’이라 불린다.
현존하는 고려 시대 팔각다층석탑으로는 평양 영명사 팔각오층석탑, 평양 광법사 팔각오층석탑, 평양 율리사지 팔각오층석탑(현위치 일본 도쿄), 평안북도 보현사 팔각십삼층석탑 등이 있다.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을 제외하면 대부분 북한 지역에 남아 있어, 현재 우리가 직접 답사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2) 백제계 고려 석탑
백제계 석탑은 주로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확인된다. 이 지역의 고려 석탑들은 백제 석탑이 지녔던 부드러운 비례와 목조건축적인 요소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사례로는 미륵사지석탑을 모방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부여 정림사지 계통을 잇는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 공주 청량사지 오층석탑, 부여 장하리 오층석탑 등이있다. 그리고 김제, 군산, 정읍 등 전북 일대의 고려 석탑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석탑은 통일신라 석탑처럼 엄격한 구조와 비례를 따르기보다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떠올리게 하는 부드러운 인상이 강하다. 대부분의 부재가 별석으로 구성되고, 탑신은 비교적 얇게 높이 올라가 체감률이 크며, 전체 규모도 비교적 작은 편이다. 기단은 단층기단이 많은데, 이 역시 백제 석탑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있다.
특히 옥개석은 평평하고 얇으며 넓게 퍼지고, 처마 끝에서 가볍게 반전되는 선이 두드러진다. 이 얇은 옥개석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선’이 백제계 석탑을 한눈에 알아보게 하는 가장 분명한 단서 중 하나다.
이 같은 특징들은 백제 석탑이 지녔던 ‘목탑적 사고’, 즉 목조건축을 돌로 옮긴 조형 감각이 고려 시대까지 지역 안에서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3)신라계 고려 석탑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남아 있는 신라계 고려 석탑들은, 백제계 석탑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고려 시대 석탑의 흐름을 이어간다. 이 지역의 석탑들은 통일신라가 완성한 삼층석탑의 정형을 비교적 충실하게 계승하며, 구조와 비례에 대한 의식이 끝까지 유지된다.
기단은 이중기단을 기본으로 하며, 하대석과 상대석에는 우주와 탱주가 형식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탑신 역시 각 층이 분명하게 구분되고, 통일신라 석탑과 차이점이 있다면 폭이 좁아서 완만한 비례라기 보다는 급격한 상승감을 보인다.
앞선 글에서 말했다시피 고려 시기로 접어들면서 신라계 석탑 역시 점차 간소화되어 우주와 탱주는 형식적으로 남거나 생략되고, 옥개받침의 단수도 줄어든다. 그러나 전체적인 틀만큼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 신라계 석탑에서는 끝까지 ‘구조 중심의 석탑’이라는 성격이 유지된다.
이렇게 고려 시대 석탑은 고구려의 다각다층, 백제의 목탑적 조형, 신라의 구조적 정형이라는 서로 다른 전통을 품은 채, 지역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어졌다.
시대별 석탑을 답사하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통일신라 시기에 거의 사라졌던 각 지역의 양식은, 왜 고려에 들어와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을까?
나는 그 이유를 고려 사회의 구조 변화에서 찾고 싶다. 왕권 중심으로 사찰 건립이 이루어졌던 통일신라와 달리, 고려 시대에는 지방 호족 세력이 성장하며 각 지역이 독자적인 발언권을 갖기 시작했다. 석탑 역시 더 이상 중앙의 양식만을 따르는 대상이 아니라, 지역의 기억과 정체성을 담아내는 매개가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백제 옛 땅에서 다시 백제계 석탑이 세워진 것은, 단순한 조형의 계승이 아니라 자신들의 뿌리를 되찾고자 했던 마음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라진 왕국을 향한 기억,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자부심이 돌 위에 새겨진 결과가 바로 고려의 지역 계통 석탑이 아니었을까.
이번 편으로 우리나라 석탑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이 정도의 흐름만 알고 있어도, 여행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석탑이 어느 시대에서 왔는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만 봐도 석탑을 ‘보는 일’은 훨씬 더 즐거워진다.
다음 글에서는 조선시대 석탑을 간략히 짚어보고, 이후 내가 직접 답사하며 만났던 석탑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