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로 만나는 우리나라 석탑(5)

조선시대, 석탑은 이대로 사라지고 마는가

by 제이미


앞에서 우리는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을 이루는 백제부터 고려 시대까지, 석탑의 시대적 흐름을 한 번 톺아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 역사 속 마지막 왕조인 조선 시대의 석탑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1392년,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 조선을 세웠다.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단순히 왕조가 바뀌는 일이 아니라, 사회를 떠받치는 사상과 가치 체계까지 다시 세우는 과정이었다.


고려가 ‘왕즉불(王卽佛)’이라는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했다면, 조선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질서를 선택했다. 이 변화는 ‘숭유억불(崇儒抑佛)’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불교의 상징이었던 석탑 역시 점차 중심 무대에서 물러나게 된다. 고려 시대까지 활발하게 세워졌던 석탑들은 조선에 들어서며 눈에 띄게 줄어들고, 그 존재감 또한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의 석탑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현재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 석탑은 연구자에 따라 약 15여 기에서 20여 기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조선시대 석탑을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이중기단 구조를 갖추고 탑신부의 구성 역시 비교적 분명한 석탑이다. 둘째는 다각 평면과 다층 구조를 유지한 유형이다. 마지막은 구조보다 장식적 조형이 강조된 유형이다.


순서대로 신륵사/대원사/벽송사/낙산사 석탑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첫 번째 유형에는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 낙산사 칠층석탑 등이 있다.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과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은 하층기단에 여전히 한 개의 탱주가 남아있다. 특히 함양의 벽송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후기 석탑과 많이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묘적사 팔각다층석탑/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두 번째 유형에는 남양주 묘적사 팔각다층석탑, 남양주 수종사 오층석탑 등이 있다. 2기의 석탑에는 고려시대 건립되었던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의 인상이 여전히 남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다각다층이라는 고구려계 계보가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미약하게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창경궁에도 팔각칠층석탑이 하나 더 남아 있는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탑은 조선시대 건립된 것이 아니라 만주에서 온 상인을 통해 들여온 중국식 석탑이라는 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단부 형식이 예전에 중국 소림사에서 보았던 승탑과 닮아 있어, 이러한 해석이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현등사 삼층석탑/ 회룡사 오층석탑

마지막 유형은 장식성이 굉장히 돋보이는 석탑들이다. 가평 현등사 삼층석탑과 의정부 회룡사 오층석탑이다. 이 석탑들의 탑신부와 기단 갑석을 자세히 보면 석탑을 보고 있는 건지 목조건물을 보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정도로 돌을 깎아 만든 조형임에도 실제 목조건물을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회룡사 오층석탑 일층 탑신부를 보고 있자니 예산 수덕사 대웅전이 떠올랐다.


사진 위: 수덕사 대웅전/ 아래: 회룡사 오층석탑 초층탑신부

상기 언급한 석탑들 외에도 고려식 석탑의 특징이 보이는 단층기단에 탑신 폭이 좁아 수직감이 돋보이는 청주 보살사 오층석탑,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금산 신안사 칠층석탑, 안성 청원사 칠층석탑 등이 있다.


조선 시대 석탑은 기본적인 구조에서는 통일신라와 고려의 전통을 이어가지만, 세부 표현에서는 조선만의 특징이 드러난다. 특히 기단부 지대석에 연화문이나 기단부 면석에 안상을 조각하는 사례가 많아진다.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처럼 기단 면석에 운룡문을 새긴 경우도 있는데, 이는 불교적 상징에 왕실적 이미지를 더한 조선 특유의 장식 감각이라 할 수 있다.


즉 조선의 석탑은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기보다는, 기존 석탑의 틀 위에 문양과 상징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구조적 실험 대신 장식적 표현이 강조되며, 이런 점에서 조선 시대 석탑은 ‘변화’보다 ‘존속’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살펴본 백제, 통일신라, 고려 석탑의 특징을 표로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조선 시대 석탑은 이 세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부분적으로 계승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별도의 항목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표) 백제, 통일신라, 고려 시대 석탑 특징 비교

이번 글에서는 조선 시대 석탑에 대해 살펴보았다. 눈에 띄는 발전이나 새로운 정형은 없지만, 조선의 석탑은 이전 시대의 특징을 잃어버리지 않고 조용히 살아남았다.


어쩌면 우리 역시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오래된 기억과 습관, 가치 위에 새로운 하루를 쌓아 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선의 석탑처럼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시대별로 만나는 우리나라 석탑(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