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 석탑
지금까지 여러 글을 통해 석탑의 유래와 구조, 시대별 특징을 정리해 보았다. 앞으로는 직접 답사하며 만난 석탑들을 하나씩 이야기해 보려 한다.
그렇게 내가 처음으로 찾은 답사지는, 경주의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다.
제작시기: 신라
국보
소재지: 경북 경주시
답사일: 2025년 1월 15일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感恩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의 사찰 터에 세워졌다.
은혜의 대상이 누구일까?
그 답은 감은사지가 자리한 장소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절터는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능 바로 옆에 있다. 감은사는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뜻에 보답하고자 세워진 사찰이다.
문무왕릉은 다른 왕릉과 다르다. 동해에 조성된 우리나라 유일의 수중릉으로,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국 의지가 담긴 무덤이다. 전설에 따르면 감은사에는 바다와 통하는 해저 통로가 있어, 문무왕이 용이 되어 이곳을 오갔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이 석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문무왕의 의지와, 그 뜻을 기리고자 했던 아들 신문왕의 마음이 함께 담긴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감은사지에는 형태와 규모가 거의 같은 두 기의 석탑이 동쪽과 서쪽에 나란히 서 있다. 이 때문에 이 석탑은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이라 불린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감은사지처럼 금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석탑을 배치하는 쌍탑식 가람배치가 널리 유행했다. 이는 좌우 대칭을 통해 건축적 안정감을 강조하는 동시에,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배치였다.
쌍탑구조의 석탑에는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을 비롯해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등이 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구조로, 전체 높이는 약 13.4m에 이른다. 통일신라 석탑 가운데서도 상당히 큰 규모에 속하며, 특히 하대기단만 해도 약 3m에 달해 탑 전체를 묵직하게 떠받치고 있다.
이 석탑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각 부분이 하나의 거대한 석재로 구성되지 않고 수십 개의 부재를 조합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기단부와 탑신부, 옥개석에 이르기까지 돌을 잘게 나누어 쌓아 올린 방식은, 석탑이라기보다는 목탑의 구조 방식을 연상시킨다.
감은사지 석탑은 돌로 만들어졌지만, 사고방식 자체는 아직 목탑에 가까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기둥과 보를 세우듯 부재를 나누어 조립한 이 구조는, 목탑의 건축 원리를 석재로 옮겨오던 과도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감은사지 석탑은 완성된 통일신라 석탑의 정형이라기보다는, 그 정형이 만들어지기 직전 단계에 놓인 초기 대형 석탑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잘 짜인 구조를 알고 다시 탑을 올려다보니, 감은사지 석탑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묘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특히 동해를 마주한 이 자리에서 감은사지 석탑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바다를 향해 서서 외적을 막아내는 장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과 파도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모습, 수백 년의 시간을 견뎌 온 침착한 기세가 고스란히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