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 석탑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혼자 마지막 답사를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운 짐을 챙기고 길을 나섰다.
익산까지 가는 두 시간 동안, 창밖의 논과 작은 마을 풍경이 지루한 시간을 대신 채웠다. 시골길 특유의 느릿한 분위기는 늘 그렇듯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정류장에 내리자, 길 건너 들판 너머로 회색 돌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제법 떨어져 있는데도 그 크기가 느껴질 만큼 또렷했다.
오늘 답사할 석탑은 바로 익산 금마면에 있는 미륵사지 석탑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석탑이다. 목탑이 주류였던 시대에 목조 건축의 구조를 그대로 돌로 옮겨 놓은 ‘과도기적 석탑’이라는 점이 이 탑의 중요한 특징이다.
제작시기: 백제시대
국보 제11호
소재지: 전라북도 익산시 금산면
답사일: 2025년 11월 15일
미륵사지는 이름 그대로 ‘미륵사’가 있었던 절터다. 지금은 대부분의 건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지만, 터 전체를 한 바퀴만 돌아봐도 한때 얼마나 거대한 사찰이었는지 단번에 느껴진다.
미륵사는 일반적인 일탑일금당이 아니라, 삼탑삼금당(三塔三金堂)이라는 매우 특별한 배치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대지 위에 탑 3개와 금당 3개를 나란히 배치한 방식으로, 오늘날 전국 어디에서도 이 구조를 온전히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미륵사지뿐이다.
현재는 서탑과 동탑만이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금당과 중앙 목탑 자리에는 기단과 초석만이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서탑은 오랜 해체·복원 과정을 거쳐 현재 모습을 갖추었고, 동탑은 무너진 상태였던 것을 서탑을 참고해 1993년에 복원했다.
서탑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넓고 낮게 펼쳐진 기단부가 시선을 끈다. 일반적인 ‘탑의 받침대’라기보다 작은 건물의 토대를 떠올리게 하는 구조다. 사찰 건물의 아래 부분을 그대로 돌로 만들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기단 위로는 네 개의 굵은 돌기둥이 지붕을 떠받치듯 서 있다. 그 위에 얹힌 옥개석은 끝부분이 살짝 들어 올려져 있는데, 들림이 절제되어 있어 과장 없이 자연스럽다. 돌로 만든 탑임에도 목조건물 지붕의 분위기가 은근하게 배어 나오고, 이 온화한 인상이 바로 백제 석탑만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원된 동탑은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굵은 중심 기둥(心柱)이 세워져 있고, 사방으로 계단이 놓여 있어 목조건축의 구조를 돌로 옮긴 백제 장인의 방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돌이라는 재료를 사용했음에도, 그 안에는 분명 목탑의 건축 감각이 남아 있다. 백제 장인들이 새로운 재료에 적응하면서도 익숙했던 목조 기술을 어떻게 응용했는지, 그 고민이 탑 내부에서 선명하게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