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석탑의 '美', 석가탑

통일신라시대 석탑

by 제이미

경주는 내가 가장 자주 찾았던 도시이자,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경주는 신라의 수도답게 도시 곳곳에 신라의 흔적이 촘촘히 남아 있다. 가끔은 “경주 아무 곳이나 땅을 파면 유물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통일신라가 고려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경주가 수도로 기능했던 시간은 약 천 년이다. 우리가 광복 이후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고작 80여 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 도시가 쌓아 온 시간의 두께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경주에 유적이 많은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 수많은 신라의 흔적 가운데, 경주에 오면 놓치지 않고 꼭 둘러봐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불국사다. 오늘 내가 답사한 석탑 역시 이곳 불국사에 자리하고 있다.

불국사 대웅전 앞을 지키고 있는 삼층석탑. 흔히 석가탑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바로 그 탑이다. 바로 옆에는 독특한 형태의 다보탑이 자리해 있는데, 다보탑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하고, 오늘은 석가탑에 먼저 집중하려 한다.

경주 석가탑 (불국사 삼층석탑)

제작시기: 통일신라

국보

소재지: 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

답사일: 2025년 1월 15일


석가탑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불경 속 한 장면에서 비롯된다. 『법화경』 ‘견보탑품’에는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하자, 다른 세계의 부처인 다보여래가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 거대한 보탑을 세우고 나타났다는 장면이 나온다. 불국사 대웅전 앞에 마주보고 선 두 탑은 바로 이 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소박한 삼층석탑은 석가모니를, 화려한 다보탑은 다보여래를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을 자연스럽게 ‘석가탑’이라 부르게 되었다.


불국사 삼층석탑에는 법화경의 이야기 말고도 또 하나의 슬픈 이야기가 얽혀 있다. 불국사 탑을 짓기 위해 신라로 온 백제 출신 석공 아사달과 그를 찾아 신라까지 건너온 아내 아사녀의 이야기다.


아사녀는 남편을 보기 위해 불국사까지 왔지만 끝내 남편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스님에게 “연못에 탑의 그림자가 비치면 남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매일 연못가를 찾아 그림자가 드리워지기를 기다렸지만 탑의 그림자는 끝내 비치지 않았고, 아사녀는 깊은 절망 속에서 연못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이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불국사 삼층석탑은 석가탑이라는 이름 외에도 ‘그림자가 없는 탑’이라는 뜻의 무영탑(無影塔)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사달과 아사녀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후대에 덧붙여진 전설이지만, 이런 사연을 알고 나서 탑을 바라보면 전과는 다른 마음이 든다. 그저 한 번 보고 지나칠 수 있는 탑이 아니게 된다.


불국사 삼층석탑은 이렇게 여러 이름과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동시에, 통일신라 석탑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준점’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처음 마주한 석가탑은 한마디로 “깔끔하다”는 인상을 준다. 마치 잘 맞춘 정장 한 벌을 입은 제임스 본드처럼, 높이도 폭도 어느 한 부분이 튀지 않는 균형감 속에 서있다. 장식은 거의 없고, 기단–탑신–옥개석이 교과서처럼 정확하게 나뉘어 단정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기단부는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답게 이중기단 구조다. 하층기단과 상층기단에는 각각 두 개의 탱주와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그 위로 올라간 삼층 탑신은 급격한 체감 없이 거의 동일한 비례를 유지한다. 1층 탑신이 유독 길거나 위층으로 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고려 석탑들과 달리, 석가탑은 각 층의 균형이 고르게 맞춰져 있다.


그래서 탑 앞에 서면 시선이 어느 한 곳에 꽂히지 않고, 위에서 아래까지 자연스럽게 오르내린다.

탑신의 단정한 비례는 옥개석(지붕돌)에서도 이어진다. 백제 석탑이 얇고 완만한 곡선을 은근하게 품고 있다면, 석가탑의 옥개석은 한 번 더 또렷하게 꺾어 올린 통일신라 특유의 힘 있는 곡선을 보여준다.


처마 끝이 단단하게 치켜 올라가 있어, 탑 전체가 아래로 가라앉기보다 위로 힘차게 뻗어 나가는 느낌을 준다.


가까이 다가가 돌 표면을 살펴보면 치석이 얼마나 고르게 되어 있는지 눈에 들어온다. 면과 면이 만나는 이음새는 틈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정확하고, 각 부재의 두께와 길이도 놀라울 정도로 일정하다.


이런 점들 때문에 석가탑은 “통일신라식 정형 석탑”을 이야기할 때마다 기준처럼 소환되는 존재가 되었다. 나 역시 답사를 마치고 다른 석탑들을 떠올릴 때, 결국 머릿속에서 비교할 기준이 되는 탑은 언제나 이 불국사 삼층석탑이다.


노을이 내려앉은 신라의 릉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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