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석탑
오랜만에 서울에 들를 일이 생겼다. 습관적으로 지도를 열어보다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낙성대 삼층석탑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조선시대 석탑’이라는 말에 발길이 저절로 향했다.
조선시대 석탑은 그 수가 많지 않다. 불교가 억압받던 시대였으니 새로 세워질 이유도 많지 않았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도 손에 꼽힌다. 그런 탑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괜히 반가웠다.
제작시기: 조선
시도유형문화유산
소재지: 서울특별시 관악구
답사일: 2026년 1월 31일
낙성대 삼층석탑은 단층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린 구조다. 기단은 네 장의 판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갑석은 비교적 두터운 편이다.
초층 탑신 받침 역시 다른 석탑들에 비해 굉장히 두껍다. 각 층 탑신석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으며, 옥개받침은 2단으로 간략화되어 있다. 상륜부는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초층 탑신 면석에는 ‘강감찬 낙성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명문 덕분에 이 탑이 단순한 불교 신앙 대상이 아니라, 강감찬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적 성격의 석탑임을 알 수 있다.
낙성대랑 강감찬 장군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낙(落)’은 떨어질 낙,
‘성(星)’은 별 성,
‘대(垈)’는 터 또는 언덕을 뜻한다.
별이 떨어진 곳, 낙성대는 강감찬 장군의 생가터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전해지는 설화에 따르면,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진 자리를 찾아갔더니 그곳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고, 그 아이가 훗날 강감찬 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낙성대라는 이름은 바로 이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낙성대 삼층석탑 역시 이곳이 단순한 사찰 공간이 아니라, 강감찬 장군의 탄생지이자 그의 공적을 기리는 장소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전체적으로 옥개석과 기단 갑석이 두터워 묵직한 인상을 주고, 치석은 정교하기보다는 다소 거친 편이다. 통일신라나 고려 왕실이 세운 석탑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비례감과는 결이 다르다.
이 점을 종합해 보면, 낙성대 삼층석탑은 국가 주도의 대규모 불사가 아니라 지역 사회가 중심이 되어 세운 민간 기념 석탑으로 이해된다. 화려하거나 정교하진 않지만, 그만큼 솔직한 느낌이 남는다.
직접 마주한 낙성대 삼층석탑은 종교적 상징물이라기보다 한 인물을 기억하기 위한 구조물에 가까웠다. 돌의 두께와 투박한 조형 속에서, 장식보다 마음이 먼저 전해졌다.
흔치 않은 조선시대 석탑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날의 걸음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