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석탑
아마 25년도 마지막 답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수원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석탑을 찾아 길을 나섰다. 답사를 다니며 느끼는 즐거움은 단순히 석탑을 보는 데에만 있지 않다. 그 지역에 얽힌 이야기와 뜻밖의 역사적 사실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답사를 한층 풍요롭게 한다.
이번 길에서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바로 ’ 천안(天安)’이라는 지명에 담긴 뜻이었다. 고려 태조는 이 지역을 삼남(三南)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여겼고, 이곳이 평안하면 천하가 평안하다는 신념을 담아 천안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오늘 답사할 대상은 바로 이곳, 천안에 자리한 천흥사지 오층석탑이다. ‘천흥사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현재 절은 사라지고, 석탑만이 옛 사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작시기: 고려 현종 원년(1010)
국보
소재지: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 190-2
답사일: 2025년 12월 29일
천흥사는 고려 태조 4년(921)에 창건된 사찰로, 발굴 과정에서 대형 동종과 당간지주가 발견되면서 과거 상당한 규모를 지닌 사찰이었음이 밝혀졌다.
탑에서 약 5분 정도 걸어가면 한 가정집 대문 앞에 비교적 완전한 모습을 갖춘 당간지주가 서있다. 당간지주가 사찰 입구 앞에 세워지는 것을 감안하면 천흥사가 얼마나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천흥사지 오층석탑은 이중기단 위에 오층의 탑신을 올린 구조다. 하층기단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무려 일곱 개씩 조각되어 있다. 답사일에는 비가 내린 직후라 빗물이 돌 표면에 고여 문양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세밀한 구성만으로도 이 탑에 쏟아부은 장인의 공력이 느껴졌다.
기단부에서는 고려시대 석탑의 양식적 특징이 또렷하게 읽힌다. 하층기단과 상층기단 모두에서 탱주(撑柱)가 생략되고, 상층기단 모서리에만 우주(隅柱)가 표현되어 있다. 통일신라 석탑이 고수하던 엄격한 기단 구성이 한 단계 간소화된 것으로, 이를 단순히 퇴보나 생략으로 볼 것이 아니라, 고려 나름의 새로운 조형 감각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옥개석을 올려다보면 처마선이 거의 수평에 가깝게 펼쳐지다가 끝에서만 살짝 위로 들려 있다. 얇고 직선적인 처마선이 탑 전체에 날렵한 인상을 준다. 그 아래의 옥개받침은 3단으로 간략화되어 있는데, 이 또한 고려시대 석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이처럼 천흥사지 오층석탑은 통일신라 석탑의 기본 형식을 계승하면서도, 간결함과 실용성을 지향한 고려 석탑 특유의 조형 세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번 답사는 석탑의 분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석탑 하면 으레 경상도지역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충청도 곳곳에도 고려시대의 석탑들이 제 자리를 지키며 있었다. 그 사실이 이번 답사의 가장 인상 깊은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