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나는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친구 집에서 자기로 했다가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자려고 눕기만 하면, 꼭 해야 할 일을 끝내지 못한 것처럼 조급하고 불안해져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특별히 예민하다거나 까다롭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직장 생활 초기에는 출장이 별로 없었다. 외국 출장이 몇 번 있긴 했지만, 호텔은 내 자취방보다 훨씬 넓고, 깨끗하고, 편하고, 좋았다. 물론 잠도 잘 잤다. 그 후, 옮긴 직장은 좀 달랐다. 국내 여기저기 많은 사업장들이 있어서 한 달에도 몇 번씩 동료들과 출장을 다녀야 했다. 그러면서 점점 예전에 익숙했던 그 조급증과 불안감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마음은 출장 일정이 잡히면 시작되었고, 출장이 끝나면 가라앉았다.
오랜만에 대학교를 다닐 때 같이 자취를 했던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한참 얘기를 하던 중, 내가 너무 예민해서 많이 힘들었다는, 좀 의외의 말을 했다.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것도 싫어하고,
방이 조금만 어질러져 있어도 신경질을 내고,
아주 조그만 소리에도 너무 민감하게 굴었다고 했다.
그 밖에도 몇 가지 말을 더 했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대체로 그런 비슷한 말들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남을 힘들게 했다는 말의 잔상 때문이었는지, 그 친구의 다음 말들이 잘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잊고 있었지만, 내가 좀 그랬던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내 마음속에서는 또 그때와는 다른 부류의 불편한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책임이 커지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았다.
실수를 하면 안 된다. 단 한 번의 조그만 실수라도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일하는 게 너무 싫다. 언제나 이런 회사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나?
표정도 늘 무거웠던 모양이다. 처음엔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냐?’는 주위의 말들을 그냥저냥 흘려서 들었다. 그런데 듣게 되는 횟수가 반복되면서, 더는 그런 소리를 듣는 게 싫었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직원들에게 장난도 걸어보고 썰렁한 농담도 해보자는 것이었다. 직원들 책상 위에 놓여있는 청포도 사탕이나 과자를 집어먹고, 대신 커피를 타 주기도 하면서. 이렇게 하다 보니 서로가 전보다 더 친근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새로운 사탕이나 과자를 사 오는 날은 내 자리로 갖고 오기도 했다. 늘 불안하고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던 그 무게감이 좀 약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혼자라는 생각이 줄어든 이유였던 것 같았다. 기대 이상이었다. 현상은 별로 바뀐 게 없었는데, 내 마음과 느낌은 그렇게 조금씩 바뀌었다. 우연치고는 굉장한 우연이었다.
‘긍정하고, 그냥 하면 된다. 긍정도 중요하지만, 무엇이든 해 보는 게 더 중요하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마음속 깊숙이 있던 향초를 기억해 냈다. 오래전 자취방의 퀴퀴하고 불쾌했던 냄새를 잊게 해 주었고, 살랑살랑 흔들리는 불꽃에 마음이 가벼워졌던 향초였다. 어느 순간 내 마음이 필요하다는 걸 느낄 때, 나는 이 향초를 켠다. 항상 생각대로 되지는 않지만, 가끔은 되기도 한다. 설사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긴장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때
‘오늘도 무사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인형이 떠오를 때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이럴 때, 나는 마음속의 향초를 켠다.
그러면 그 흔들리는 불꽃의 향기는 이런 말을 들려준다.
긴장이나 걱정이 없다면, 편안함이나 행복도 없어
불안이나 긴장도 없는 것보다는 나아
어차피 될 일이야, 걱정할 필요 없어
두리번거리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데서도 행복 같은 게 보일 거야
그 결과가 어땠는지 분석해 보지는 않는다. 그냥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향초를 켤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비록 잠시뿐이라고 해도 그 너울대는 불꽃과 향기는 긴장되었던 내 어깨를 쑥 내려가게 만들고, 눈 위를 지나 이마까지 올라갔던 화를 다시 내려준다. 그리고 꼭 쥐고 있던 주먹을 슬며시 풀어놓는다.
지금도 내 마음속에는 향초가 있다. 평소에는 그 향초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내 마음이 어둠에 빠졌다고 생각될 때나 안 좋은 냄새를 느낄 때 나는 그 향초를 켠다. 마음만큼 안 될 때도 있지만, 별 상관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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