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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재 Mar 10. 2023

고향, 경주 구경

수학여행이든 신혼여행이든 가족여행이든 한두 번 경주를 가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 곳이 내 고향이다. 지난 겨울 무척 추웠던날, 오랜만에 옛날 친구들을 만나러 다녀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 동안 별렀던 시내 구경을 했는데,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고속도로에서 보문단지로 이어지는 외곽 길은 익숙했지만, 시내 구경을 한지는 20년도 더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되었다지만, 그 조그만 도시에서, 거기서 태어나 살았던 게 몇년인데 길이야 헤맬까?   


KTX 출발시간까지 세 시간쯤 여유를 두고, 친구 차를 얻어 타서 봉황대와 천마총 부근에서 내렸다. 어렸을 때 자주 놀았던 곳이었다. 그 때는 울타리도 없었고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미끄럼을 타면서 놀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상상하고 있는 그대로, 학교에 있던 미끄럼틀과는 차원이 다른 길이였다. 그렇게 놀아서는 안 될 곳이란 걸 그때는 몰랐다.  물론 첨성대도 우리 놀이터 중 하나였다. 그런 곳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보호를 받는 곳이 될지 누가 알았겠나!

차에서 내린 곳은 <금관총_신라 이사지왕의 기억> 이었다. 만들어진지는 얼마 되지 않은 건물이었고, 천마총처럼 안으로 들어가서 무덤 내부를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전시하고 있는 부장품들과 돌무지와 무덤 양식들은 마치 기초 공사 중인 건축 공사장 같은 모습이었고, 너무나 깔끔하고 깨끗해 보여서 실감은 별로 나지 않았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했지만.     

시내 구경을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살짝 부풀었다.      


금관총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곳이 어디쯤이라는 건 생각해 뒀고, 또 한 시간 반 정도 다녀 볼 곳들도 마음속으로 대충 정해두었다. 시작점이 어디든 동서로 통하는 길과 남북으로 통하는 길을 교대로 다녀 볼 생각이었다.

     

경주 시내는 바둑판처럼 반듯하고 별로 넓지도 않아서, 주요 거점 몇 개만 잘 기억하고 있으면 별로 헤맬 일은 없는 곳이다. 물론 중간에 샛길로 빠지는 삐뚤삐뚤한 골목길들은 있지만, 시간 관계상 반듯한 큰 길들만 다녀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작과 동시에 혼돈의 상태에 빠졌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청기와 다방”의 간판이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데…. 주변의 모습도 생소했다. 하지만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을 긍정적으로 고쳐 먹었다. 관광도시인만큼 거리 모습을 젊게 바꾼 것일 수 있고, 또 청기와 다방은 그 긴 시간동안 어떤 사정이 있어서 옮겼을 수도 있을 테니까. 이건 나의 기억과는 관계없는, 사실의 변화로 인한 잠시의 혼돈이었다고 믿었다.


편하게 대충 결론을 내리고 시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곧 내가 잘 아는 곳이 나올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하지만, 이건 오판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날씨 탓도 있었던 것 같았다. 12월 18일, 그날은 너무 추웠다.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일요일 오후였음에도 길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상점들도 한가해 보였다.      


점점 더 불안해졌다. 경주 시내 구경을 위해 허용된 시간은 이미 절반 정도 지나갔다. 내 기억 속의 지도는 별 구실을 못했고, 그냥 짐작으로만 움직였다. 우리 집이 어디쯤이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집 근처라고 추정되는 곳을 몇 번이나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봤지만 단정할 수가 없었다. 또 명보 극장이 있던 곳과 오백 당구장이 있던 건물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비슷한 모양의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어서 도무지 옛날의 특징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전반적으로 실패였고, 기차 시간은 눈 앞에 와있었다.

열차 안에서 지도를 찾아봤다. 청기와 다방은 옛날 그 자리에 여전히 있었고, 그 앞에 황량하게 서있던 이름 모를 능이 깔끔한 건물과 함께 금관총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었다. 이것만 알았어도, 헤맬 일은 없었을 텐데, 안타까웠다. (그랬을 것 같았다.)     


기대했던 대로는 아니었지만, 마치 로고 블록으로 쌓아 올린 것 같은 나지막한 건물들과 사각형 모양의 돌 블록들이 깔린 시내의 모습은 귀여웠다. 또 예전엔 제법 넓었다고 생각했던 도로들도 적당히 아담하게 보였다. 그 길을 통해 나는 자전거를 타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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