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손재주가 없다. 정말 너무 없다고 생각해 왔다. 무엇을 만들거나 고치는 것은 물론이고, 미술 실기 시간도 엄청난 고역이었다. 그래도 나한테는 손재주 이상의 끈기와 저력이 있다. 비교를 해보지 않아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내가 지금 사용하는 노트북은 퇴직할 때 직원들이 준 선물 중 하나였다. 새삼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노트북의 팬(Fan) 소음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집 밖에서 사용할 때는 <이러다 쫓겨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지금까지 참고 버틴 것도 나의 인내심과 끈기 덕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도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노트북을 선물해 준 그 직원들에게 AS까지 책임지는 셈 치고 직접 고쳐달라고 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문가들이고 또 원체 탐구를 좋아하는 성격들이니까. 그리고 나면 또 우리는 그 일을 계기로 함께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테니까.
만약 노트북 제조사가 국내 회사였다면, 별 고민 없이 서비스 센터로 달려갔을 테지만, H로 시작하는 외국 제품이라 센터가 많지도 않았고, 서비스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은 새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노트북 뒤 케이스를 열어보기로. 그런데 처음부터 실패의 연속이었다. 고무 패드 뒤에 숨겨져 있었던 나사못 중 하나를 빼지 않은 채 케이스를 분리하려다 두 군데가 깨졌다. 내 가슴도 깨지는 것 같았다.
“케이스를 열기 쉽게 직관적으로는 왜 안 만드는지…” 원망과 왜 시작했는지 후회가 되었다.
하여튼, 케이스를 분리한 후, 입으로 먼지를 불고, 면봉으로 주변을 깨끗하게 닦았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대로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태라는 생각에 밤새도록 인터넷을 뒤졌다. 이미 먼지는 제거했으니, 이번엔 소프트웨어적으로 접근을 해 볼 생각이었다. 몇 가지 방법을 머릿속에 정리한 다음 조용한 새벽에 노트북을 켰다.
먼저, 제어판에서 이런저런 설정을 변경하고 확인하기를, 그러기를 십여 차례 이상 반복해 봤지만 역시 별 효과는 없었다. 대개는 이쯤에서 포기를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제조사 홈페이지로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조사가 제공하는 최신 드라이브를 업데이트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이것저것 다운로드를 하고 설치를 해봤지만, 결과는 역시 이번에도 내가 기대하던 그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내가 이 노트북을 고친다면 그것은 참 기이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물론 혹시나 하는 기대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니 뭐 별로 아쉬움은 없었다. 투자한 것이라곤 몇 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했던 게 다였는데, 그 정도야 살다 보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날 새벽에만 전원을 켰다가 껐다가 한 횟수가 최소한 스무 번은 넘지 않았을까 싶다.
현실을 받아들인 다음 다시 누웠고, 잠이 들었다가 깼다.
그리고 노트북을 부팅하려는데 얘가 이미 켜져 있었다. 사용하지 않을 때도 팬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잠을 깨곤 해서 사용 후에는 늘 전원을 끄는데. 그런데 자면서 팬 돌아가는 소리도 못 들은 것 같았고, 잠에서 깨지 않았던 것도 확실했다.
어쩌면 내가 내 손으로 노트북을 고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시험을 했다. 부팅도 해보고, 프로그램들도 올려보고 인터넷 접속도 해보고 등등... 그런데 조용하다. 귀를 대보니 약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소리는 나지만. 너무 귀여운 소곤거림이었고 사랑스러운 소리일 뿐이었다. 어디다 내놔도 욕먹을 소리는 아니었다.
이렇게 내가 노트북을 고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손을 댄 게 너무 많아서, 어디쯤에서 어떤 방법으로 고쳐지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이번에도 증명할 수는 없지만, 나의 끈기와 집념으로 이룩해 낸 승리였다. 만약 다시 같은 증상이 생긴다면, 그날 새벽에 사용했던 모든 방법을 재현해 보면 된다. 그리고 그때는 좀 더 천천히, 메모도 하면서, 각 단계별 결과까지 확인을 하면서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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