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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재 May 03. 2023

노트북 수리를 시도하다

나에겐 손재주가 없다. 정말 너무 없다고 생각해 왔다. 무엇을 만들거나 고치는 것은 물론이고, 미술 실기 시간도 엄청난 고역이었다. 그래도 나한테는 손재주 이상의 끈기와 저력이 있다. 비교를 해보지 않아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내가 지금 사용하는 노트북은 퇴직할 때 직원들이 준 선물 중 하나였다. 새삼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노트북의 팬(Fan) 소음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집 밖에서 사용할 때는 <이러다 쫓겨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지금까지 참고 버틴 것도 나의 인내심과 끈기 덕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도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노트북을 선물해 준 그 직원들에게 AS까지 책임지는 셈 치고 직접 고쳐달라고 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문가들이고 또 원체 탐구를 좋아하는 성격들이니까. 그리고 나면 또 우리는 그 일을 계기로 함께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테니까.          

만약 노트북 제조사가 국내 회사였다면, 별 고민 없이 서비스 센터로 달려갔을 테지만, H로 시작하는 외국 제품이라 센터가 많지도 않았고, 서비스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은 새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노트북 뒤 케이스를 열어보기로. 그런데 처음부터 실패의 연속이었다. 고무 패드 뒤에 숨겨져 있었던 나사못 중 하나를 빼지 않은 채 케이스를 분리하려다 두 군데가 깨졌다. 내 가슴도 깨지는 것 같았다.      


“케이스를 열기 쉽게 직관적으로는 왜 안 만드는지…” 원망과 왜 시작했는지 후회가 되었다.     


하여튼, 케이스를 분리한 후, 입으로 먼지를 불고, 면봉으로 주변을 깨끗하게 닦았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대로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태라는 생각에 밤새도록 인터넷을 뒤졌다. 이미 먼지는 제거했으니, 이번엔 소프트웨어적으로 접근을 해 볼 생각이었다. 몇 가지 방법을 머릿속에 정리한 다음 조용한 새벽에 노트북을 켰다.     


먼저, 제어판에서 이런저런 설정을 변경하고 확인하기를, 그러기를 십여 차례 이상 반복해 봤지만 역시 별 효과는 없었다. 대개는 이쯤에서 포기를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제조사 홈페이지로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조사가 제공하는 최신 드라이브를 업데이트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이것저것 다운로드를 하고 설치를 해봤지만, 결과는 역시 이번에도 내가 기대하던 그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내가 이 노트북을 고친다면 그것은 참 기이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물론 혹시나 하는 기대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니 뭐 별로 아쉬움은 없었다. 투자한 것이라곤 몇 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했던 게 다였는데, 그 정도야 살다 보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날 새벽에만 전원을 켰다가 껐다가 한 횟수가 최소한 스무 번은 넘지 않았을까 싶다. 

          

현실을 받아들인 다음 다시 누웠고, 잠이 들었다가 깼다.     


그리고 노트북을 부팅하려는데 얘가 이미 켜져 있었다. 사용하지 않을 때도 팬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잠을 깨곤 해서 사용 후에는 늘 전원을 끄는데. 그런데 자면서 팬 돌아가는 소리도 못 들은 것 같았고, 잠에서 깨지 않았던 것도 확실했다.      


어쩌면 내가 내 손으로 노트북을 고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시험을 했다. 부팅도 해보고, 프로그램들도 올려보고 인터넷 접속도 해보고 등등... 그런데 조용하다. 귀를 대보니 약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소리는 나지만. 너무 귀여운 소곤거림이었고 사랑스러운 소리일 뿐이었다. 어디다 내놔도 욕먹을 소리는 아니었다.     


이렇게 내가 노트북을 고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손을 댄 게 너무 많아서, 어디쯤에서 어떤 방법으로 고쳐지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이번에도 증명할 수는 없지만, 나의 끈기와 집념으로 이룩해 낸 승리였다. 만약 다시 같은 증상이 생긴다면, 그날 새벽에 사용했던 모든 방법을 재현해 보면 된다. 그리고 그때는 좀 더 천천히, 메모도 하면서, 각 단계별 결과까지 확인을 하면서 해야 할 것 같다. 


(이미지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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