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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재 May 24. 2023

인터넷, 편리한 만큼 겪어야 하는 것들

인터넷의 시초는 옛날 미국 국방부에서 만든 아르파넷이란 것이었고, 그 목적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컴퓨터의 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국방부에서 주도했으니 당연히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했을 거라고 짐작된다.          


그 인터넷이 지금 우리 생활의 많은 곳에 적용되어 편리함을 주고 있고, 또 그 편리함의 범주는 엄청 빠른 속도로 계속 넓어지고 있다. 아마 몇 년 후쯤이면 지금의 편리함이란, 그저 전설 속의 이야기가 되어 있거나 박물관에나 들어가게 될 것처럼.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단 몇 시간의 통신 장애만으로도 겪어야 하는 우리 사회의 혼란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그때마다 이런 사고의 영향력은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넘어 법적인 문제로까지 번졌고 우리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이렇게까지 죽기 살기로 의존하면서 살아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예기치 않은 조그만 실수 하나로도 대규모 통신 장애는 생길 수 있고, 어떤 사고에 이은 2차적 사고로도 그럴 수 있다. 만약 긴박한 상황에서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이 될까? 지진이나, 전쟁이나 뭐 그런. 통신 시스템의 장애까지 갈 필요도 없이 그저 내 손에 있던 폰만 사라져도 아마 내 머리와 마음에선 난리 법석이 나지 않을까?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고,     

가야 할 길도 못 찾고,     

은행 거래도 할 수 없고,     

몇 번 버스를 어디에서 타야 집에 가는지도 알기 힘들다.        



필자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PC를 보지 못했다. 취직을 한 후, 회사 내부의 시스템만 보다가 1994년에 처음으로 인터넷이란 걸 알았고, 전화선을 통한 모뎀을 이용해서 접속을 했다. 그리고 점차 확장된 인터넷의 기능을 상상했고 몇 년 후, 급기야는 직장을 때려치웠다. 그리고 20년이 넘는 동안, 이런저런 IT 관련 일을 해왔다. 물론 그 IT의 일 속에 인터넷은 항상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회사의 전체 시스템을 관리하던 시절, 시스템 장애가 발생하면 그 순간부터 초긴장 상태가 된다. 장애가 날 만해서 나는 경우도 많지만 정말 어이없이 생기는 경우들도 얼마든지 있다.     

     

건축이나 도로 공사 중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매설된 케이블을 끊어 먹기도 하고(그렇게 해놓고도 대부분은 모른다), 항온항습기의 오작동으로도 그럴 수 있고, 작업자의 하찮은 실수로도 그럴 수 있다. 이런 사고들은 휴일이나 평일을 가리지 않고 낮이나 밤이나 새벽도 가리지 않는다. 필자에게 전화 공포증이 생긴 건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였던 것 같다. 어떤 날은 하룻밤 사이에 기계로부터 날아오는 SMS를 수 백 통이나 받은 적도 있었다.          


그 당시 아침 출근길에 문득문득 떠올랐던 게 있었다. 오래전 대부분의 택시가 포니였던 시절, 룸미러에 매달려 흔들리던 <기도하는 소녀의 모습과 “오늘도 무사히”란 문구>         


인터넷처럼, 이런 편리한 시스템의 이면에는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아주 해로운 것들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을 마비시켜, 수십만 년 동안 진화해 온 호모 사피엔스의 창의력을 저하시키고 성취감을 느낄 기회를 원천 차단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점점 더 기계에 의존하게 되고, 절대 배신을 하지 않을 것 같던 그 기계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거나 한 눈을 팔게 되면 우리는 끔찍한 사태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처음엔 환호성을 질렀지만, 이런 부작용까지는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원자력 발전소를 처음 만들었을 때 역시 환호성을 질렀겠지만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고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또 공장을 짓고 많은 물건을 만들면서 풍요로운 삶을 꿈꿨겠지만 환경이 이렇게까지 망가질 건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설사 부작용을 알았다 하더라고, 그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돈을 쓰는 바보가 있었을 것 같진 않다.               

우리 사회를 이렇게 편리하게 만들고 있는 이런 시스템을 어찌 없앨 수야 있을까? 다만 맹목적으로 “디지털 트랜스 포메이션”을 따라 외치기 전에, “이런 문제도 있을 수 있겠구나!”를 한 번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법률로 정하고 기업이 노력하면 통신 장애 사고는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겠지만, 누가 뭐라 해도 기업은 돈만 벌면 그만이라고 보는 게 옳다. 하지만 우리 소비자들까지 내 돈 들여 내 영혼을 갉아 당장의 편리함과 바꾸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싸울 것인가? 도망갈 것인가?”의 판단과 그 판단이 성공했을 때, 그래서 배가 불렀을 때, 그때 가졌던 성취감을 이미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에,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얻어야 할 행복감을 영원히 약탈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인터넷 덕분에 훨씬 수고를 줄이면서 편하게 살면서, 딱 그만큼 생각하는 힘과 행동과 긍정적 느낌을 잃고 있는 것 같다.     


(이미지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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