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고 생각했던, 도저히 죽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나무가 또 꽃을 피웠다. 지독하게 힘들었을 환경을 이겨낸, 그 남아있던 작은 생명이 경외스럽다. 파란 하늘과 짙푸른 색의 잎에 점점이 박혀있는 진홍색의 조그만 꽃들은 크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은근한 멋이 있고 또 껍질이 벗겨져 매끈해진 가지는 신비로움도 준다.
3년 전 봄, 대문 앞 화단에 크지 않은 배롱나무 세 그루를 나란히 심었다. 이 나무들이 진홍색의 꽃을 당장 피우지는 못해도, 쉽게 죽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지들은 바싹바싹 말라갔고, 아무리 물을 줘도 그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어린 나무를 옮겨 심은 탓에 그 스트레스를 견뎌내지 못한 것 같았다.
어느 날, 별생각 없이 두 손으로 잡고 흔들다 뽑으니 한 그루가 쑥 뽑혀 나왔다. 조그만 남천 나무나 블루베리 나무도 그렇게 쉽게 뽑히지는 않던데. 그렇게 두 그루를 뽑은 다음, 그래도 좀 힘이 남아있었던 한 그루는 그냥 놔둬 보자는 생각을 했다. 살기는 어려워 보였지만, 한 몇 달 그냥 놔둔다고 해서 무슨 일이 날 것도 아니고, 한 번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냥 아쉬워서였다.
그해 가을, 태풍에 그 나무는 뿌리째 뽑혀서 넘어졌다. 이제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안 그래도 죽은 듯, 살아나기 힘든 어린 나무를 태풍까지 나서서 죽이려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다시 구덩이를 파서 그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지주목을 사다가 삼각형 모양으로 받쳐서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도 시켰다. 그리고 그 해 겨울을 났다.
이듬해 여름, 놀랍게도 그 나무에서 꽃을 발견했다. 중간 높이의 가지들을 건너뛴 맨 꼭대기의 가지에 많지도 않은 몇 송이의 조그만 꽃이 피어 있었다.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탓에 더 기뻤던 것 같았다. 그렇게 가을까지 교대로 피고 지고 피는 꽃들을 볼 수 있었다.
그 해 겨울 가지치기를 했다. 삐죽했던 모양을 몽글몽글하게 다듬고, 뭉친 모양도 적당히 풀어줬다. 봄을 지나면서 예쁜 모양의 나무가 만들어지고 여름과 가을, 백일 내내 피울 꽃을 생각했다. 뽑아버린 두 그루도 함께 살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란 말은 늘 맞다. 이듬해 그 나무는 꽃을 피우는 둥 마는 둥 또 배신을 했다. 하얗고 매끈해야 할 가지는 시커메져 있었고, 가지도 듬성듬성한 게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검색과 탐색을 해봤지만, 별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그냥 비료 좀 주고, 약 좀 주고 또 그렇게 겨울을 나 보기로 했다.
그랬던 것이 올해 또 이렇게 다시 꽃을 피웠다. 참 대견했다. 그동안 우리 집에 와서 두 번이나 죽었다 살아난 걸로 이 어린 나무의 일평생 모든 고생이 끝났으면 좋겠다.
올해 남은 태풍에 잘 견딜 수 있게 흔들리는 지주목을 고쳐 세웠다.
물가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