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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Dec 02. 2015

시인의 당부

따라간 여행, 모시고 간 여행

기형도 시인을 좋아한다. 1980년대 불투명한 오늘만을 살다 너무나 짧은 생을 마감한 청춘. 영원히 젊은 고독 속에 살며 때로는 타자화된 여행자로 모퉁이의 노파, 술집에서 마주친 고양이 등을 길 위에서 중얼거리는 영혼이었다. 자신에의 깊은 애정과 학대에 가까운 자기연민을 동시에 기록하는 그런 시인이었다.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시인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삶은 빈한해졌고 그로 인해 추억 또한 황량해졌다. 우수한 성적으로 어렵사리 대학을 마치고 기자로서 사회에 발을 디뎠지만 여전히 세상은 추운 밤이었다. 당대의 비극적 세계관을 온몸으로 끌어안듯 그는 종국에 누구보다 빨리 생의 소멸에 가 닿았다.


아주 다행히도 나의 유년은 그렇지 않았다. 결코 부침이 없는 시기는 아니었으나 절대적인 부모의 믿음이 있었다. 어머니는 보수적이면서 개방적이었다. 아마도 그림을 그리다 공학을 공부하겠다 한 것도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보수적이고 애착 강한 어머니의 영향이 분명 작용했을 테다. 홀로 떠난 세계여행을 가장 많이 걱정한 것이 어머니이면서 가장 크게 응원해준 것도 어머니였다. 호기롭게 여행을 마치고 김중만 선생님을 만난 것까지는 좋았다지만 서른이 되도록 변변한 경제활동을 못할 때나, 스튜디오 독립 후 일이 없어 힘든 시기도 조용히 지켜봐준 어머니였다. 나 스스로는 여행으로, 촬영으로 그토록 온갖 데를 돌아다니면서 정작 부모님과의 여행은 다녀본 적이 없었다. 부모와 자식간의 여행은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따라간 것과 모시고 간 것 두 갈래로 나뉜다.

아마도 대학 이후 부모님과는 여행을 가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즉 한번도 모시고 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부모님도 두 분이서 잘 다니시니 서로 굳이 그런 필요를 느끼지 못했나 보다.


동생이 어느 날 명절에 가족여행을 가면 어떻겠나 제안을 했다. 자기가 결혼하면 이제 넷이서 가족여행을 갈 기회는 없어진다며 협박아닌 협박을 하는게 아닌가. 처음에는 반대했다. 굳이 사람도 많고 티켓가격이 두 세 배씩 뛰는 명절연휴에 나가야하느냐 말이다. 하지만 나를 제외하고는 시간을 내기 어려운 가족들이 동시에 맞출 수 있는 때는 별로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 결국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그사이 동생은 여러 곳에서 많은 것을 경험한 덕에 길 위의 시간을 즐길 줄 알았고, 어머니는 몹시도 좋아하셨다. 진작에 모시고 나왔어야 했다.


더구나 사진을 한다는 놈이 제대로 사진 한 번 찍어드리질 못했다. 발리의 아름다운 스미냑 해변을 배경으로 그녀를 세워 두고서 추억을 담았다. 작게 보이는 실루엣만으로도 소녀 같은 기쁨이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과 여행을 다녀보았지만 누구보다 가족이 편했고, 새로운 여행의 동반자를 알게 된 느낌이었다.


기형도 시인의 경우 부모보다 먼저 떠나는 불효를 하게 되었다. 열무를 이고 돌아오던 그의 어머니는 팔순이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아들의 시집을 읽게 되었다. 무려 26년 만에 글을 깨우치고 다시 받아 든 아들의 시. 시인은 늘 밝고 활기찬 아들이었고, 시대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글을 쓰는 영혼의 방랑자였다. 그 아들이 마지막까지 어머니에게 당부했던 것은 부디 글을 깨치시라는 것이라 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여행이 있고, 각자의 글이 있다. 나이 든 부모라 해서 예외일 리 없다.


- 전명진 에세이 <낯선>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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