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진 May 29. 2015

전명진의 꿈같은 소리 #_2

 촌스럽게 한복은 무슨

인도여행을 마치고 군 복무를 하면서 차근히 세계여행의 꿈을 키워가던 어느날. 함께 인도에 다녀온 친구 한명이 남미에 같이 가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 명, 늘 오빠만 여행다니고 하는 것이 부러웠던 여동생이 따라나섭니다. 함께하려던 몇몇의 친구들이 더 있었지만 결국은 취업이나 학업등의 이유로 떠나지 못했죠.


홍대의 어느 고깃집에 둘러앉아 술잔만 바라보던 셋은 말이 없습니다. 고기가 익는 줄도 모르고 그저 먼 산만 멀뚱히 쳐다봅니다. 모인이유는 ‘재미있고 새로운 걸 해보자.’ ‘집떠나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데, 우리도 한국적인 뭔가를 해보자.’ 라고만 생각했을 뿐, 정작 잘 하는게 없었습니다. 사물놀이, 태권도 이런 것도 이미 누군가 했고, 잘하지도 못했죠.


그러다 잔을 내려놓은 동생이 내뱉습니다.

“한복을 입으면 어때?”


거기에 처음 저의 대답은 “에이.촌스럽게 한복은 무슨.”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동의하시나요? 지극히 일반적인 스물 다섯 젊은이의 시각이라면 어떻습니까?

동생이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한복은 입고서 사진만 찍으면 되잖아.”

그래도 한복은 별로라 생각했죠. 명절에도 더이상 입지 않고, 결혼식 때나 도인처럼 생활하는 분들이 입는 옷이잖아요. 남은술을 비우고 돌아와 이래저래 생각을 해 봤습니다. 딱히 답이 떠오르지는 않더군요. 그러다 어느날 사촌누나의 결혼식이 있어 어머니께서 새로 한복을 맞추러 간다시기에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따라나섰습니다. 동네의 큰 한복집은 다양한 색의 비단으로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한눈에 반한 저는 사장님께 말씀드렸죠. 이런저런 여행을 할 계획이고, 한복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도와주시면 은혜는 잊지 않겠다. 사장님은 젊은 친구들의 생각이 멋지다며 매우 흔쾌히 저희 세명의 한복을 지어주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여행에 필요한 몇가지를 협찬 받아보려고 정말 수 많은 기업과 기관에 요청을 해도 번번히 거절당하던 터에 받아들여졌다는 점이었죠. 거기에 용기를 얻은 저희는 케이블의 한 여행프로그램에도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대와 동시에 저는 브라질을 시작으로 남미 땅에 섰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거기에는 정말 다양한 삶의 양상이 펼쳐져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에 놓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우리 고유의 복장이 처음 보는 배경에서 이전에 없던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에 감탄했습니다.

페루의 마추픽추가 내려다보이는 와이나피추에서 사진을 찍는 저희에게 ‘이게 기모노니?’‘너는 중국에서 왔니?’하는 질문을 받으면 한국만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강조해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되려 우리가 우리 문화를 스스로 즐기려는 일에는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외국인들에게 ‘이런게 한국거야.’라는 전달이 아니라, 우리스스로에게 ‘맞아. 이게 우리의 멋이지.’ 하는 식으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냥 이렇게 이야기하려니 잘 와닿지 않으실듯해서 사진으로 준비했습니다.




나름 귀엽고 새롭지 않나요? 3개월의 남미여행을 마치고 동생과 친구를 보낸 뒤 혼자 남아 앞으로의 여행을 생각하니 갑갑했습니다. 치솟는 환율에 여행경비도 많이 모자랐죠. 우연히 현지인들의 집에서 생활하는 카우치서핑(CouchSurfing)이라는 숙박형태를 알게 되었습니다. 말그대로 카우치,즉 소파를 서핑한다는 이야기인데요, 내가 사는 집의 공간 일부를 여행자에게 제공하고 언젠가 내가 다른 곳을 여행가면 숙소를 제공받는 개념의숙박입니다. 꼭 재워주거나 하지 않아도 차 한잔 하며 친구가 되는 등 다양한 지구촌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선순환의 개념이죠. 물론 비용은 무료. 그래서 내심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시작한 것이 이 카우치서핑입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이유가 달라집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가장 가까운곳에서 생활상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방법인거죠. 그러면서 1년 동안 세상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며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를 잘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남미를 시작으로 북미를 거쳐 서유럽과 아이슬란드,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다시 북유럽으로, 그리고 아시아를 지나는, 총48개 나라에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아름다운 여정이었습니다. 그만큼 저는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고생도 많이했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되려 제 자신이었습니다. 홀로 여러 상황에 놓인 제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더 진솔하게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이라는 것이 늘 즐겁고 재미있기만 할 수는 없잖아요. 더구나 적은 돈으로 긴 시간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보냈기에 스스로을 돌아다보고 진짜 제 자신을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가장 정직한 자신으로 살아가자. 였습니다. 앞으로의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삶을 살겠다는 각오가 섰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안정된 직장, 좋은 집,좋은 차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요. 대신 시스템 밖에도 길이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너무 단단한, 그러나 보이지 않는 어떤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일종의 '권장생애주기'같은 것에서 벗어난다면 큰일 나는 것처럼 말이죠. 비록 축구를 잘하는 것도,은반위의 요정도 아니었지만 저만의 길을 걸어보기로 한겁니다. 한복이 아프리카에서도 어울릴거라는 걸 아무도 몰랐듯이 말이죠.


작가의 이전글 전명진의 꿈같은 소리 #_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