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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Jun 02. 2015

전명진의 꿈같은 소리 #_3

별이 되길

제 직업은 사진가입니다. 아직 대단히 유명하지도, 굉장한 화보를 찍은 것도 아닌 그저 젊고 평범한 사진가입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의 직업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는 터라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아 원래의 세계여행 이야기를 잠시 접어두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수 많은 사진가가 있어왔습니다. 그 유명한 ‘찰나의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있고요, 소심하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시간에만 촬영했던 ‘파리의 시인’ 으젠느 앗제가 있죠. 다큐멘터리 사진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종군 사진가 로버트 카파에서 ‘창세기의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두까지. 인물사진의 리처드 아베돈 또한 사진을 공부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스승입니다. 그들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위대한 사진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모두  기록가,라는 것입니다. 인물의 특징을 기록하고, 현장을 기록하고, 정서를 기록합니다. 그 기록을 통해 세상과 이야기하고 자신의 철학을 내비칩니다. 사진가라는 직업의 장점이자 단점이라 한다면, 촬영하려는 대상이 있는 공간에 반드시 가야만 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발로 직접 찾아야 한다는 것이죠. 스튜디오 사진의 경우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현장의 분위기에 충분히 동화되고 상황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니까요. 인물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의 심리와 살아온 과정을 최대한 이해하고 공감한 뒤의 촬영은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에게 조금은 거창한 직업의 소명을 부여했습니다.

‘시대의 기록자’가 될 것.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가도, 돈을 많이 버는 자산가도 아닌 그저 묵묵히 세상 사람들의 옆에서 그 삶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소극적 일지 모르나 쉼 없이 기록하고 그것을 다른 곳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도 중요하다 보았습니다. 언론이 할 수 없는 삶의 소소한 감상이나 지구 건너편의 아름다움도 포함해서 말이죠. 그래서 저는 늘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습니다.

아주 얼떨결에 사진을 배우게 했고, 5년 동안 제게 사진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분이 한 인터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배우고  싶어할 텐데 어떻게 제자를 받으시느냐?’는 질문에 대답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어렵지 않다. 이놈이 무덤까지 카메라를 가져갈 놈인가 아닌가만 파악하면 된다.”고 하시더군요. 그때만 해도 저런 식상한 대답을 하시나 했습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2년 전 갓 독립하여 사진일을 찾아다닐 때 절실히 깨달았죠. 죽을 때 까지 사진으로 밥벌이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사진가에게는 큰 성공이다. 물론 여러 이유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겠지만 아직 제 깜냥으로는 그 정도의 이해밖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탱고의 고장 아르헨티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조그만 케이블방송에 출연하느라 방송팀과 함께 여행하던 중이었습니다. 꼭 가야 할 남쪽 끝의 도시가 있는데, 하필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연휴가 겹쳐 항공권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육로로는 며칠씩 가야 하고, 대안이 없어  항공사뿐만 아니라 시내의 여러 여행사를 찾아다녔죠. 그러던 중 어느 한국인 여행사를 발견하고 들어갔습니다. 예상대로 좌석을 구하기는 어려웠고, 잠시 쉬어가자며 여행사 회의실에 앉아 사장님과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레 탱고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정말 좋은 공연은 너무 비싸다는 푸념까지 늘어놓았죠. 이야기를 듣던 사장님은 자신의 지인이 바로 그 유명한 테아트로 카를로스 가르델의 소유주라며 소개해주겠다 하셨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훌륭한 탱고 극장의 하나인 이곳은 세계의 여러 명사들도 다녀간 유서 깊은 공간이죠. 덕분에 백스테이지 까지 둘러보고 촬영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사장님으로부터 티켓을 구했는데, 몇 명이 다른 시간에 가도 괜찮겠느냐 하시더군요. 물론 감사한 마음으로 예약을 부탁드렸죠. 이어서 혹 저녁에 시간을 낼 수 있느냐 물어보시더군요. 전통적인 탱고 공연의 진수를 보여주겠다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예전 노무현 대통령이 방문하셨던 ‘테아트로 라  벤타나’라는 공연장이었죠. 그날은 여행사 사장님도 가족과 함께였습니다.

이미 과한 친절을 받은 저희에게 사모님은 ‘타지에 나와 먹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하시며 양념에 잰 불고기를 한 보따리 내미셨습니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저희처럼 별 도움도 안될 손님들에게 왜 이리 남는 것도 없이 다 퍼주시나 여쭤봤습니다. 정작 저희가 구매한 건 비행기  티켓뿐이니까요.

그러자 사장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론 저희도 장사를 하는 사람이니 이윤을 많이 남기면 좋겠지요. 그렇지만 늘 그런 건 아닙니다. 이윤으로 남기지 못할 땐 기억으로 남기면 되지 않을까요?”하시더군요.

어떻습니까? 정말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나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는 아직 부족한 사진가입니다. 시대를 기록하겠다는 과한 사명을 스스로에게 부여했습니다. 가까운 일상에서 먼 곳까지 언제라도 셔터를 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있음에도 카메라를 들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지난해 안산에서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 올해는 슬픈 바닷가에 다녀왔습니다.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 기록하였습니다. 어느덧 1년도 더 지났지만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디 더는 안타까운 기억으로 점철된 시간이 늘어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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