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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Jun 10. 2015

전명진의 꿈같은 소리_#4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하게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1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길에서 보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경험을 했지요. 그렇지만 처음 떠나올 때의 생각이었던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 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저 흘러가는 대로가 아닌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삶의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죠.

세상 어디나 삶은 어려운 것이면서 감사한 것이었습니다. 부자에게도 가난한 자에게도 똑같은 만큼의 빛이 비춰지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은 다 녹록지 않은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더욱 알게 된 것은 바로 ‘의외의 정의’입니다. 어릴 때에나 정의를 믿었지 나이가 들면서는 도리어 세상은 그닥 정의롭지 않은 곳이라는 걸 알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말이죠. 사람 사이의 조그만 정에서부터, 사회가 갖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까지. 다양한 곳에서 ‘의외의 정의’를 마주했습니다.

캠핑에서 호텔까지 다양한 숙박의 형태가 있지만, 가난한 여행자인 당시의 저는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전 세계 여행자들의 커뮤니티가 있고 그중에 자신의 집에서 여행자를 서로 재워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덕분에 현지인들의 집에서 지내며 숙박비를 아낄 수 있었습니다. 남는 공간에 여행자를 재워주고, 문화를 교류한다는 목적이었죠. 개인적으로는 지극히 무료 숙박이라는 점 때문에 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집 열쇠를 주며 언제든지 드나들어도 좋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자신이 출근할 때에 같이 나가야 하고 퇴근 후에나 들어올 수 있는 곳도 있었죠.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하면 된다 생각했습니다. 다락 위에서 쥐들이 돌아다니는 소리를 들어가며 자야하는 곳도 있지만, 수영장이 딸린 대 저택에 저만의 방이 있고, 응접실에는 언제나 가정부가 필요한 음식을 해주는 곳도 있었죠. 그러면서 점차 더욱 많은 곳에서 시도를 했습니다. 단지 무료 숙박이 목적이 아니었죠. 다양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장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으니까요. 와인을 한 병 사 온다거나 정체불명의 한국음식을 해주며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문화와 환경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사람이 있다면 그 안에는 반드시 정이 있었습니다. 온몸으로 느끼면서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죠. 이것이 어찌 보면 인류 보편의 ‘정’이라는 것을 말이죠.


나아가 사회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최근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쿠바라는 나라가 잘 보여줍니다. 우리에게는 공산주의와 체 게바라의 상징인 쿠바. 시가와 럼, 아름다운 음악과 야구 등의 이미지를 가진 쿠바입니다. 1950년대의 자동차들이 돌아다니고 배급을 받는 가난한 나라라 알고 있지만, 실제 그들은 의료복지 선진국입니다.

아바나 시내에서 우연히 만난 현지인과 가까워져서 그 친구의 집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덥지?”하며 틀어준 선풍기에는 하나만 남은 날개가 간신히 돌아가 바람이 나오는지도 알 수 없는 그런 열악한 집이었습니다. 그러 다이야기하던 친구는 자랑스레 배급표를 보여주더군요. 빵이 얼마, 설탕이 얼만큼. 안타까웠습니다. 그날 아침에도 보았던 줄을 서서 배급을 받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뒤로 가니 이번엔 병원과 치과 등에서 진료를 받는 칸도있더군요. 놀랐습니다.

세상에 사람이 많이 아플 수도, 적게 아플 수도 있는데, 이런 것까지 배급을 하다니. 그렇지만 그 걱정은 저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쿠바가 어떤 나라입니까? 체 게바라로 상징되는 곳입니다. 그는 의학도였고, 쿠바에서는 상공부 장관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국민들이 아파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모든 마을에 주치의를 파견하기로 합니다. 우리에게는 드라마에서 나 볼 수 있는 주치의를 그들은 모든 마을 구성원이 만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배급표에 있는 병원 칸은 아프던 아프지 않던 자신의 마을 의사에게 면담을 한 것을 표시하는 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갑자기 그 사람이 쓰러진다거나 했을 때 주치의는 그의 건강상태와 병력을 소상히 알고 있으므로 1차 기관(primarycare)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지요. 덕분에 평균 기대수명 78세, 유아 1,000 명당 사망률4.76명으로 세계적인 수치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미국 캐나다의 기대수명을 앞서는 것이며, 유아 사망률, 소아마비 근절에 있어서는 선진국 어느 나라 못지 않은 수준이죠.

이것 이제가 생각하는 ‘의외의 정의’입니다. 빈부를 떠나서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고, 그 안의 소소한 정으로 서로를 지탱하는 사회를 떠받치는 근간이 되죠. 덕분에 무사히 홀로하는 1년의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 감사한 지구에 태어난 것 만으로도 존재의 의미가 있으며 우리는 각자의 존엄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요. 물론 아주 뜬구름 잡는 생각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여행을 하고 와서도 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그저  스물여섯의 젊은이였습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힘든 취업시장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써버리고 온 어설픈 주변인이었죠.

바로 회사에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갖고 있는 생각과 건강한 몸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더 이상 책에서 찾지 않으려 했습니다. 분명히 시스템 밖에도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러한 길을 걸어간 분들에게서 직접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행을 마칠 즈음 만들어둔 리스트를 들고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회의 시스템, 특히나‘권장생애주기’같은 것과는  관계없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분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제생각의 기반을 다지게 해 준 소설 <태백산맥>의 조정래 선생님을 비롯, 허영만 화백, 생전의 앙드레김 선생님까지. 그 바쁜 분들에게 아무런 이름도, 이 유도 없는 젊은이가 그저 자신과 10분 만대화를 나눠달라며 찾아가면 당연히 만나주기가 어려우셨겠죠. 한분 한 분 오랜 시간 찾아가 졸랐습니다. 길도방법도 몰랐으니까요. 앙드레김선생님은 신사동 고개에 있는 매장에 가면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그 앞에서 마냥 기다렸습니다. 어렵사리 만나 한복 사진을 보여드리니 “젊은 친구가 우리의 옷을 입고 이렇게 엘레강스하고 우아한 장면을 해 왔네요. 판타스틱해요.”하시며 들어가셨습니다. 이미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터라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웠습니다.



여러 의거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다녔습니다. 그진작가 김중만선생님의 순서가 되어 또 하염없이 스토킹과 조르기를 시전하며 찾아다녔습니다. 두 달 만에 선생님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사진을 하는 분이니 저에게 보다는 제 한복 사진에 큰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다른 분들과는 달랐습니다. 아주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고, 대화 말미에야 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물으셨죠. 앞서 들려드린 이야기를 선생님께도 했습니다. 나름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 제 길을 찾는 중이라고 말이죠.


“너 같은 애가 사진을 하면 좋겠는데.”제 이야기를 듣고 난 김중만선생님의 결론이었습니다. 배워볼생각이 없느냐 물으셨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전혀 생각이 없었습니다. 사진을 배우려고 선생님을 찾아간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 질문에 망설임 없이,“한 번 배워보겠습니다.”했죠. 이연이고 궁금했으니까요.

그렇게 아주 우연하게 선생님의 문하에 들어갔고, 단순히 사진을 어떻게 찍고 하는 것 보다는 그 분의 정신세계를 가까이서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자신만의 길에서 영혼이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어렴풋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시선을 키우는 공부를 5년 동안 하고 나와 지금은 다양한 곳에서 여러 장면을 담는 사진가로 지구의 어느 모퉁이를 열심히 걸어가는 중입니다. 특히 나 요즘처럼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시기에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하게 제 나름의 길을  가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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