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진 선장님과 함께 한 요트여행_바다로 6일
바다요? 전 세계 수많은 바닷가에 다녀봤죠. 인도의 고아에서부터 이파네마 해변과 쿠바의 말레꼰, 케이프타운의 캠스베이까지. 어지간한 바다는 다 가봤습니다. 서핑과 다이빙, 스노클링과 제트스키 등등 바다에서 즐기는 것들은 수없이 해 봤죠.
탈 것이요? 비행기, 기차와 버스, 배는 말할 것도 없고, 거대한 트레일러 트럭의 숨겨진 침실까지 알 정도로 온갖 것들을 타봤지요.
그럼 뭐가 남았냐구요? 바다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 중에 가장 수면에서 가까운 방법인 요트였습니다. 물론 니스의 해변에서 우연히 한 노부부와 만나 타보기도 했고, 부산에 가면 이따금 수영 마리나에서 요트에 올라 밀면을 배달해 먹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6일 내내 바다에 떠서 항해를 했으니까요.
지난 4월 어느 날, 페이스북을 보던 저는 냉큼 스케줄러를 열어 일정부터 확인했습니다. 세계일주 해양모험가로 잘 알려진 김승진 선장님이 겨우내 통영에 세워둔 요트를 가지러 가시는데, 함께 할 사람을 찾으셨거든요. 국내에서는 첫 번째,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단독 무기항 요트 세계일주를 마치고 돌아온 해양 모험가 김승진 선장님.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셔서 많은 분들이 알고계시죠. 처음 선장님을 알게 된 건 2014년, 제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여행수다'의 손님으로 오셨을 때 였습니다. 그 때는 아직 항해를 떠나기 전이셨고, 저희는 요트를 선택하게 된 계기, 모험을 떠날 아라파니호를 크로아티아에서 구매해 한국까지 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트 이전에도 워낙 다양한 모험을 하셨던 분이라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죠.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선장님은 바로 다시 여행수다를 찾아주셨습니다. 덕분에 누구보다 먼저 선장님의 모험담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통영으로 가시기 며칠 전에 문득 혼자 배를 가져오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에게 항해의 기쁨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올리셨고, 불과 이틀사이에 신청자는 80명이 넘었지요.(반백수가 이리 많을 줄이야) 운이 좋게도 저를 포함해 6명의 크루가 선발되어 함께 항해하게 되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쾌재를 부르며 짐을 쌌고, 통영으로 향했습니다.
아름다운 바다가 반겨줄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비가 많이 왔습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장을 보고, 배에서 필요한 연료를 구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과연 가도 될까 하는 걱정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걱정할 거 있나요. 전 세계에서 손 꼽히게 험하다는 칠레 남단의 케이프 혼까지도 무사히 건너가신 우리의 캡틴이 있는데요. 오히려 선장님은 날씨를 즐기시는 듯 했습니다.
여섯명의 멤버가 속속 도착해 장보기를 마치고 배에서의 첫날 밤. 서로를 소개하고 식사당번을 정하고 요트에서 생활하는 방법을 듣는 등 이래저래 분주합니다. 13미터의 요트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메인 침실을 비롯해 방이 세 칸, 작지만 화장실도 모두 딸려있습니다. 거기다 부엌과 응접실까지 갖출 것은 다 갖춘 아늑한 내부에 다들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의 출항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죠. 많은 생각이 오고 갑니다. 짧지만은 않은 시간, 심심하진 않을까? 처음 만난 사람들과 좁은 공간에서 잘 지낼 수 있겠지? 미루고 온 일들은 어떻게 처리하나. 좁다란 선실에 누워 잠이 듭니다.
요람에 누운듯 흔들흔들 단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비도 내릴만큼 내렸는지 마침 그쳐있었습니다. 드디어 출항. 부푼 마음을 바람에 실어 돛을 펼칩니다. 아름다운 통영 앞바다를 휘돌아 미끄러지듯 빠져나온 우리는 비진도와 욕지도를 거쳐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향합니다. 아침의 찬 바람도 그저 반가울 따름입니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금세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참가자들의 면면도 참 재미있습니다. 출항 전 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한 정철이는 무려 팀장님이 부산에서 통영까지 차로 데려다 주셨답니다. 어떻게 회사를 다녔길래 그럴 수가 있지? 며칠 함께 지내보니 충분히 그럴만한 아주 듬직한 남자였습니다. 우리 '바다로 6일' 팀의 팀장님인 윤정씨는 수 많은 바다에서 다이빙을 한 베테랑 다이버였습니다. 그녀의 한마디 "다른 일을 하려고 퇴직한 지 조금 됐는데, 퇴직금 다 쓸 때까지 놀려고요." 아. 이런 쿨한 여성을 봤나. 막내 윤주는 학기중이었지만 학교 며칠 빠지는 것 쯤 별 것 아니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기위해 참가했답니다. 이친구 정말 6일동안 멍때리는 것 하나는 일등이었더랬죠. 당찬 소녀 소현이의 이야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마 지금쯤 스리랑카의 어드메를 걷고 있을 이 친구는 세계일주를 떠나기 위해 준비하던 중 우연히 발견하여 신청하고 왔답니다. 항해를 마치고 일주일만에 여행을 떠났죠. 우연의 힘과 인연의 끈이라는 것이 늘 신기합니다만, 이번 항해에서도 느꼈습니다. 선장님의 글을 보고 즉흥적으로 신청서를 써 낸 사람이 제 주위에 또 있더군요. 여행을 사랑하는 아티스트 김물길양입니다. 탁피디님이 세계테마기행 피디 시절 볼리비아 사막에서 전명진을 주웠다면, 마다가스카르 한복판에서 김물길이라는 보석을 발견하셨습니다. 여행수다에 출연은 물론 때로는 든든한 보조 엠씨까지 도와주는 친구입니다. 세계여행했던 내용을 담은 책 아트로드의 후속으로 국내 여행편이 곧 나온다니 더욱 기대되는 일이죠. 아. 물길이는 저처럼 즉흥적으로 신청하진 않았겠네요. 급성 장염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병상에 누워 신청서를 썼다고 하니 의지 만큼은 누구보다 대단하죠. 우연히 출발 전 날 같은 합격 문자를 받고 서로 놀라며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여섯명의 항해. 딱히 뭐 안해도 얼마나 즐거웠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우리는 이렇게 수면에 앉아 쉴 새 없이 웃고 떠들며 바람과 음악 사이를 산책했습니다. 아름다운 항해는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