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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Aug 05. 2016

Walking on Windy Wild #_2

김승진 선장님과 함께 한 요트여행_바다로 6일


바다는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줍니다. 고대로부터 인류에게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해왔고,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저 너머의 세계로 이끄는 중요한 수단이 되어줬지요. 지금은 어떤가요? 물자의 대량수송이나 자원 채취 등의 필요한 역할 외에도 스쿠버다이빙, 서핑 등 다채로운 여가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요트는 어느 범주에도 들지 않으면서, 어디에나 들 수 있는 존재입니다. 바다 위를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수면을 가장 가까이에 두고 즐길 수 있으니까요. 여가와 이동이 동시에 가능한 수단이지요. 그럼 뭘 하면서 바다를 즐기냐고요? 네. 저도 같은 궁금증을 갖고 승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망망대해에 6일이나 떠 있는데, 어디 내릴 수도 없고, 딱히 할 것도 없는 곳에서 심심하지는 않을까? 좀이 쑤시면 어떡하지?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조그만 요트 위에서의 하루는 생각보다 분주합니다.



아침 5시쯤이면 잔잔하던 바다에 '우르르르르' 하는 큰 소리가 납니다. 엔진 시동소리가 아닙니다. 바로 닻을 올리는 소리입니다. 바다 위에 정박을 시켜놓기 때문에 우리가 자는 동안 배가 어딘가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해 줍니다. 뉴스에서도 진행자를 앵커라 부르는데요, 어디서나 중심을 잡고 잘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존재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조각배 한 척이든, 사회나 국가든 말이죠.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앵커맨을 정말 잘 만났네요. 김승진 선장님의 이야기야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요즘 많은 곳에 소개되어서 어떤 분인지 알려져 있습니다만 저희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자기만의 영역을 이룬 분들은 특유의 확신과 나름의 자신감이 있을 수 있는데, 선장님은 그러한 자부심을 아주 여유롭게 품고 계셨습니다. 나이가 어리든 성격이 어떠하든 누구에게나 온화하게 대하시는 모습은 외유내강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험하고 거친 바다를 건너온 사람의 억센 모습이라기보다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를 가슴에 품어버린 남자의 기품이 느껴집니다. 

사실 저희는 5시에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닻을 올리는 소리에 잠시 뒤척였을 뿐 금세 다시 잠이 듭니다. 어렵사리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침낭에서 몸을 끄집어냅니다. 토굴처럼 조그만 선실에서 빠져나와 뭐라도 돕겠다며 선장님께 인사를 건넵니다. 일찍 나온다 해도 할 일은 별로 없어요.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배를 오르내리던 선장님은 이미 돛을 다 펼치고 로프를 정리하십니다. 바람의 방향이나 그날의 날씨, 파도의 컨디션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돛을 펼쳐 가장 안정적이고 빠르게 나아가는 조합을 만들어냅니다. 바람에 따라 어떻게 돛을 펼치는가에 따라 배가 나아가는 속도를 결정할 수 있는데요, 무조건 뒤에서 바람이 밀어주면 배가 잘 나갈 거라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진행방향의 옆 또는 대각선에서 부는 바람이 가장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또 맞바람에도 배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할 수도 있고요. 돛과 키를 잘 이용하면 배의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제외한 모든 바람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돛이 바람을 안아서 배를 움직이면 키를 이용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합니다. 선장님은 친절하게 바람에 따라 돛을 다루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찾아보니 맞바람의 경우에는 비행기의 날개와 같이 베르누이 원리를 이용하는데요, 비행기가 뜨는 원리와 같았습니다. 마치 비행기 날개가 수직으로 서 있는 것과 같은 역할인 거죠.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하나의 돛(메인 세일)이 품어서 부풀어 오르면, 뒤편의 작은 돛(집세일)을 평평하게 만듭니다. 둥근 면을 타고 흐르는 공기와 반대편의 납작한 면을 타고 흐르는 공기의 속도 차이로 배는 옆으로 가게 됩니다. 이 힘을 이용해서 정면에서 오는 바람을 피해 지그재그로 주행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죠. 이런 주행법을 태킹(Tacking)이라 합니다. 이렇듯 요트를 즐기는 데에도 참 흥미로운 과학의 원리가 숨어있습니다. 


하루 일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밥입니다. 출발 전에 식재료를 잔뜩 준비해서 배에 탔거든요. 6일 치의 식량을 잘 배분해서 재료를 준비했습니다. 두 명이 짝을 이루어 돌아가면서 그날의 식사를 준비하는데요, 그게 또 참 재미가 있습니다. 흔들리는 좁은 배에서 무슨 음식을 하느냐 하시겠지만 저희는 어느 때보다 잘 먹고 다녔습니다. 메뉴도 다양해요. 제육볶음에 멍게비빔밥, 미리 만들어 가장 맛 좋은 때에 먹는다는 전작가의 야심작 '어제 카레', 심지어 통삼겹 오븐구이까지. 이 정도면 어느 지방의 맛집 기행보다도 더 잘 먹고 다닌 느낌입니다. 특히 바다에서도 쓸 수 있도록 설계된 배 안의 가스레인지가 인상적인데요. 무게추가 달린 오뚝이를 공중에 띄워놓은 듯, 드론의 짐볼처럼 배가 흔들려도 가스불은 그대로 수평을 유지합니다. 거기서 다양한 요리가 탄생했지요. 어떤 요리든 우리는 한 그릇에 다 담아 먹습니다. 라면 끓이기 좋게 생긴 양은냄비를 각자의 밥그릇 겸 앞접시로 사용합니다. 물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한 그릇으로 다 해결을 하는 거죠. 배 위에서 먹는 건 뭐든 꿀맛입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역시나 바다의 바람을 구경하며 대화를 나눕니다.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맥주를 한 캔 하면서 책을 읽기도 하지요. 돛이 달려있는 배의 마스트 꼭대기에 올라가 바다를 내려다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바람이 잔잔하고 수심이 깊지 않은 곳을 찾아 배를 정박합니다. 뱃머리에 앉아 지는 해를 말없이 바라보는 일이 중요한 일상이 되죠. 그리고 다시 저녁 준비. 이런 단출한 삶을 언제 살아 봤나 싶을 정도로 그 나름의 원초적인 정취가 사람을 여유롭게 합니다. 고요한 바다 위, 쏟아지는 별 하늘 아래의 와인 한 잔은 세상의 어떤 먼지도 이곳까지는 오지 못할 거라는 느낌을 줍니다.     



언제 씻냐고요? 아무리 여유로워도 우리는 씻지 않았습니다. 물이 없거든요. 물론 공간도 좁아서 제대로 샤워를 하기는 어렵지요. 물론 무한정 넘치는 바닷물로 씻어도 되겠지만 5월 초순의 바다는 아직 많이 차가웠습니다. 배의 스크루에 해조류가 걸려 선장님이 잠시 들어갔다 나오셨을 뿐 저희는 엄두도 못 내겠더군요. 대신 항해 중간 격포항에 정박했던 날 우리는 채석강을 구경하고 목욕탕에 다녀왔지요. 3일 동안 양치만 하던 몸의 묵은 때를 벗겨내니 아주 개운했습니다. 뭐 다들 이곳저곳 많이 다녀 본 사람들이라 그런지 며칠씩 씻지 않아도 그다지 답답하지는 않더군요.


그렇게 아름다운 6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서해안의 전곡항에 도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배를 깨끗이 청소하고 항해를 마무리했지요. 어디서나 흔히 경험하기 어려운 일을 흔히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들과 했다는 행복감이 가슴 가득 차 올랐습니다. 그 결과로 김물길 양은 멋진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바다 위에서 음악과 그림, 대화와 음식이 어우러진 꿈같은 시간이었지요. 다시 한 번 멋진 경험을 선물해 주신 선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 자신에게 새로운 영감과 흐려지던 모험에 대한 생각들을 불러일으킨 이번 항해. 

세계여행을 처음 떠날때 알게 되었던 한 마디가 다시 한 번 항해를 하는 내내 머릿속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배는 항구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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