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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Sep 21. 2017

D-38.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하여

1.

어제 리딩큐어 수업 마지막 부분에 조를 짜서 상담 대상을 정하고 행동주의를 적용해 상담 계획을 짜는 과정이 있었다.

교재에서는 개가 무서운 사람, 학교 가기 싫은 아이 등이 예시로 나왔지만 좀 더 생생한 상담 계획을 짜기 위해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 보았다.

한 수강생은 초등학생 아이의 엄마셨는데, 아들이 학교나 학원 숙제를 미리 해놓지 않고 막판에 몰아서 하는 게 습관이어서 이를 고쳐주고 싶다는 의견을 내셨다.

아이의 엄마 입장에서는 속상하고 고민스러운 부분이었겠지만, 솔직히 들으면서 '응? 저건 누구나 그런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대학교는 물론이요,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나 역시 숙제를 미리 해놓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상대적으로는 미리 해놓는 편에 속하긴 했겠지만, 영어 그룹과외 수업 직전에 닥쳐서 단어를 외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같은 조가 된 다른 분들도 그런 행동은 문제이긴 하지만 상담에서 다뤄야 할 수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모아져서 다른 타겟을 대상으로 정했다.


2.

그날 저녁,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을 둘러보는데, 누군가가 '미루는 습관을 고치고 싶어요 ㅠㅠ'같은 글을 게재했다.

데드라인에 몰리지 않으면 일을 시작하지 않는데, 이런 습관 때문에 직장 생활이 힘들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이 글을 보면서, 그 수강생의 아들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냥 누구나 조금씩은 갖고 있는 보편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심화되면 어른이 되어서도 괴로운 습관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걸 알게 되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든다.

어디까지를 정상으로 봐야 할까?


세상에 문제도, 고민도, 단점도 없는 사람은 없다.

모두 조금씩은 서툴고, 완벽하지 않다.


나는 해야 할 일을 미루는 특성이 그냥 사람의 완벽하지 않은 특성 중 하나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어떤 사람한테는 심각하게 스트레스가 되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어렵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나누는 것도.

어디까지를 정신과와 전문 심리 상담이 필요한 영역으로 봐야하는지도.


4.

일단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경우는 크게 1)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서(본인이나 타인에게 심각한 위협이나 해를 가하는 수준) 입원이 필요한 정도와 22) 어느 정도 약물과 상담의 도움을 받으면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1)의 경우는 누가 봐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2)의 경우는 좀 애매하다.

너무 고통스러운데도 참는 사람도 많고, 이것이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특히 본인이 아닌 타인에 대하여, 지나치게 높은 잣대를 들이밀어 정상인 사람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 상담을 받는게 필요할 수 있다고 본다. 건강한 사람도 비타민 챙겨먹고 홍삼 챙겨먹듯이, 정신 건강도 심각한 상태가 되기 전에 미리 챙기는 게 나중에 큰 위험을 막을 수 있다.


5.

지나치게 스스로를 정상의 범주 안에 집어넣으려고 할 필요 없다.

조금 문제 있다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결핍이 있다고 인정해도 갑자기 삶에 지각변동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동시에 비정상의 범주에 너무 집착해서 스스로를 깎아내릴 필요도 없다.


내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어서 4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정신분석을 받은 게 아니었듯, 정신과는 미친 사람이나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 헛것이 보이는 사람만 오는 곳이 아니다. 감히 말하건대 사회적 잣대로 구분 짓는 정상과 비정상은 결국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 <나도 한번쯤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싶다> 중에서(김현정, 센추리원 출판)



정상과 비정상은 교집합이 굉장히 큰 두 개의 원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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