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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Sep 27. 2017

D-33. 직면

10년이 지나도

1.

지난 토요일, 고등학교 동창 3명을 만났다.

그 중 1명은 1학년 때 같은 반을 했던 친구였고, 2명은 공부 잘하는 아이끼리 야간 자습을 모아서 시켰던 심화반 친구들이었다.


예전에 다른 글에서 썼지만, 난 고1 때 외톨이였다고 기억한다.

진짜 외톨이였던 시기는 한 두달이었고, 그 뒤에는 친구가 생겨서 괜찮아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 당시 반 아이들이 나를 싫어했다고 생각하고는 했다.


고1 때 친구 L은 대학교에 온 뒤 친해졌다.

학교는 달랐지만, 나는 그 당시 영상동아리를 하고 있었고, L은 전공이 영상이었다.

우연히 연락하다가 서로의 공통 관심사를 알게 되고, 그 뒤로는 1년에 한 번씩은 꾸준히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었다.


2.

그렇지만 한 번도 L과 고1 때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용기가 안났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나를 재수없는 애로 기억하고 있을까봐.

벌써 10년도 더 된 시절의 나이지만, 여전히 나는 나이기에 과거의 내가 비난받는 것도 두려웠다.


3.

이번에는 용기를 내봤다.

너의 기억 속에서 고1 때 나는 어떠한 애냐고.

많은 걸 기억하지는 못했다.

공부를 잘했고, 모르는 걸 잘 알려주는 애였다고 기억했다.


그리고 내가 왕따나 따돌림이라는 표현을 쓸 때 이를 정정해 주었다.

너는 그냥 반에서 겉도는 편이었지,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았다고.

또 자기는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고.

처음에는 좀 걱정했는데, 언젠가부터 같이 다니는 친구가 생기는 걸 보고 안심했었다고.


4.

같이 심화반을 했던 친구 J는 학년장 선거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2 때 학년장 선거에 나갔는데 떨어졌었다.

그런데 J는 그게 아이들이 나를 시기했었기 때문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선거 유세 등에서는 내가 더 잘했지만, 아이들은 공부 잘하는 내가 학년장까지 하는 걸 별로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5.

내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애정이 담긴 시선이었다.

나에게 친구가 생긴 걸 보고 안심했던 마음.

내가 학년장에 떨어진 게 아이들의 시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던 마음.


그 때의 나도 따뜻한 눈으로 봐주었던 친구들이 있었구나.

그 마음에, 여전히 상처받은 상태였던 17살의 나는 위안을 받았다.


10년이 지나도 상처는 거기에 있었고, 위로는 유효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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