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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Sep 29. 2017

D-31. 돈 앞에서 작아지는 연습

돈은 소중하니까

1.

어제는 울었다.

남자친구랑 이야기하다가 서운함이 치밀어올라서 울었다.

나는 남자친구나 가족들같이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잘 운다.

오죽하면 남자친구가 나를 핸드폰에 저장해놓은 이름이 '울보'일까.


2.

어제 운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양가 부모님들께 드릴 신혼여행 선물 이야기를 하다가, 이걸 반반으로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남친왈, "이제 누구 돈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나? 어차피 내 돈으로 할 거잖아"


나는 아니라고 했다.

물론 우리가 생활하는 데 남친이 벌어오는 돈이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맞지만, 내가 모아놓은 돈에서 꺼내쓰는 돈도 분명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우리의 결혼 후 자산 관리 계획, 정확히는 남친의 월급 사용 계획에 대한 정리를 한 번 해보았다.


- 남친은 월 50만원의 적금을 든다.

- 결혼 후 가사일(청소, 빨래, 주말 식사 준비)은 내가 전담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남친은 '가사노동비' 명목으로 나에게 50만원을 지급한다.

- 내가 20만원, 남친이 40만원을 내서 총 60만원으로 한 달 생활비를 운용한다.


다시 남친왈, "그럼 140만원을 제외한 돈은 내가 알아서 해도 되는 거지?"


얘기하다 보니 부모님 용돈을 빠뜨렸다.

한달에 약 40만원쯤이 양가 부모님 용돈으로 나가야 하는데, 나는 내가 10만원, 남자친구가 30만원을 낼 것을 제안했다.

남친은 7:3 비율을 제안했으나 일단은 내가 제안한 3:1 비율로 하기로 했다.


이후 남친왈, "2년 후에 출자 비율을 재조정하자. 자기가 나한테 얼마나 헌신하고, 내가 돈 벌어오는 것에 고마워하느냐에 따라 비율을 조정해야겠어."


3.

처음에는 그냥 '응?' 하고 말았지만, 점점 섭섭해졌다.

앞으로 잘하라는 말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은근 제대로 안하면 재정적 압박을 가할 것 같은 협박(?)처럼 들렸다.

이게 다 내가 서점한다고, 아마 내년까지는 벌이가 거의 없을 것이 예상되기에 일어난 일이라 돈 못 버는 사람의 서러움도 밀려왔다.

내가 돈만 제대로 벌었어도 저런 헌신에 대한 압박을 받지는 않았을텐데... 당당하게 1:1로 생활비나 부모님 용돈을 낼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돈 앞에서 작아지는 내 모습이 싫었던 건데, 괜한 화풀이를 남친한테 했다.

말을 꼭 그런 식으로 해야 했냐고.


남친은 일단 미안하다고 했지만(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타인이 기분나빠하면 미안하다고는 함), 자기는 농담으로 했던 부분도 있고, 그렇게 잘못은 안했다고 생각한다고 나중에 덧붙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남친도 이해는 된다.


4.

내년에 서점을 하면 소비를 극도로 아끼거나,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거의 다 써야 한다.

내 서점의 메인 비즈니스모델은 1) 책판매 2) 상담 3) 각종 모임 개최가 될텐데, 1) 책판매는 돈이 안될게 뻔하고, 2) 상담은 꽤 오랜기간 무료로 할 것이고 3) 각종 모임 개최 역시 초기에는 최소 운영비 정도만 받을 생각이라 수익이 될지 모르겠다.

내가 아직은 절박하지 않아서 서점으로 돈 벌 생각을 안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서점으로 돈을 버느니 부업으로 과외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


5.

그런걸 다 떠나서 그냥 돈 앞에 작아지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돈 벌 궁리를 열심히 안하는 예비 자영업자로서 말이다.


돈을 벌지 못하는 나는 돈을 벌 때의 나만큼 당당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천원짜리 물건을 사는데도 신중해져야 할 것이고,

나를 먹여살리는 남친에게 헌신하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할 것이다.


대신 그래도 내 시간을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쓸 수 있을 것이다.


내 선택의 대가다.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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