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현주/금정연, <일상기술연구소>
1.
백수로 산지도 어언 70일이 지났다.
돌이켜봤을 때, 시간은 느리게 갔다.
뚜렷하게 한 일이 많지는 않지만, 하루하루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그날의 에너지만큼 해나갔다.
후회는 없다.
이 정도면 괜찮은 70일이었다.
남은 30일도 크게 리듬 깨지 않으면서, 적당히 자고,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서점을 추진해가면서 보냈으면 한다.
2.
제현주/금정연 씨의 <일상기술연구소>는 동명의 팟캐스트 방송을 옮긴 것이다.
돈 관리, 일 벌이기, 배우고 가르치기, 함께 살기, 손으로 만들기 등 평범한 일상을 사는 어른이라면 한번쯤 들어두면 좋은 주제에 대해서 일상의 기술자들이 나와서 소개를 한다.
대부분의 일상기술자들은 직장인이 아닌 독립생활자였다.
남들에게는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답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본인들은 여전히 고민많고 다양한 삶의 파도를 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3.
오히려 "내가 이러려고 돈 버는 건데"라는 자기만의 가치관을 가진 분들을 보면 돈 쓰고 되게 행복해하거든요. 그렇지 않고 돈을 펑펑 쓰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삶의 우선순위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만족하지 못하니까 돈에 대한 여러 가지 불만이 생기는 거죠. - '돈 관리의 기술' 중
"내가 이러려고 돈 버는 건데"라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속담이 이런 뜻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교육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무의식 중에는 '돈은 아끼는 게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가치관이 심어져 있다. 어디에 어떻게 돈을 썼냐보다는 소비한 돈의 총액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써야 되는 곳에는 어쩔 수 없이 쓰지만, 쓰고 싶은 곳에는 어느 정도 죄책감을 가지며 돈을 썼던 것 같다. 난 아직도 내 삶의 우선순위를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당당하게 "내가 이러려고 돈 번거야!" 라는 말을 조만간 할 수 있도록, 우선순위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봐야겠다.
쓸데없는 것, 쓸데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그건 다른 사람들이 만든 기준이잖아요. 그런 것과 상관없이 남들이 보기엔 쓸데없는 일이지만 나한테는 재밌는 일이거나 해보고 싶은 일을 그냥 할 수 있는 것, 남들이 쓸데없다고 생각하건 말건 상관없이 밀고 나가는 것, 그 안에서 생겨나는 게 자기완결성이라고 생각해요. 객관적 쓸모와 상관없이 끝까지 밀고 나갔을 때 생겨나는 만족감이 삶의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요. - '손으로 만드는 기술' 중
엄마는 내가 서점하는 것을 탐탁치 않아하신다. 그래봤자 엄마의 반대는 귀여운(?) 정도여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엄마를 비롯해 내가 서점을 하는 것에 대해서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좀 있을 것 같다. 그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경제적 가치 창출 여부로 치환될 수 있는 '객관적 쓸모'와 상관없이 밀고 나가는 뚝심이 주는 만족감과 삶의 안정감이 있다고. 물론 이 일이 잉여짓 수준이 아니라 본업이 되었을 때의 리스크는 개인이 담당해야 한다.
직장생활이 일상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때는 그 안에서 다른 것을 해보려는 에너지나 욕구가 잘 생기지 않아요. 뭐가 하기 싫다는 마음은 있어도, 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진 않죠. 물론 현실적인 고려, 특히 경제적인 고려를 안 할 수 없지만, 일단 방향을 전환하려면 좀 여백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 '나만의 작은 가게 꾸리기' 중
회사를 다니기는 싫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친구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문장이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사람들은 이에 드는 비용을 간과하고 투자하기를 꺼려한다. 안타깝게도 여백의 시간이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건 아니지만, 백수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나 개인적 불안은 조금 감내해 보라고, 용기를 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까 성공에 대한 전망이라기보다 망하지 않으려면 얼마큼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한 거죠. 잘 안 되었을 때의 최저선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래서 얼마 이상은 투자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스스로 조건을 찾는 거죠. 그래야 마음 편하게 사업을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나만의 작은 가게 꾸리기' 중
서점은 마진이 굉장히 적은 사업이다. 그래서 애초부터 돈 까먹을 각오를 하고 시작한다. 경제적으로는 망할 게 필연적이기 때문에, 얼마나 손실을 볼 것인지 열심히 따져본다. 경제적으로는 확실히 쓸데없는 짓이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최대한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