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지 Lizzy Oct 07. 2017

D-24. 우연을 우연으로 두기

추억을 걷는 시간 1

0.

연휴동안 한껏 게을러지는 동안 글이 2편이나 밀렸다.

10월이 되어서 날짜를 세다보니, 내가 결혼식 당일을 포함해서 100일을 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식 전날을 진짜 D-1으로 만들려면 글을 한 편 더 써야 한다.

그리고 오늘 역시 생생한 글감은 낚이지 않았다.

글 4편을 어떻게 쓸까 하다가... 추억을 좀 털어보기로 했다.



1.

힙스터 느낌이 물씬 풍기는 유럽의 젊은이들 4명이 뭔가 심각한 작당을 하고 있고, 1명은 그들을 바라보며 유유자적 기타를 치고 있는 위 사진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호스텔에서 찍은 사진이다.

얼마 전 서랍 정리를 하다가 인화해놓은 사진 더미에서 이 사진을 보았는데, 프랑크푸르트 생각이 났다.

프랑크푸르트에는 딱 하루 머물렀다.

별로 기억나는 장소도 없다. 그냥 고층 빌딩이 많았다는 것 정도?


프랑크푸르트가 의미 있는 이유는 이 호스텔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이 호스텔에서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이다.


2.

2011년 8월, 나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교환학기를 보내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탄다.

싼 표를 끊기 위해 경유를 2번 했는데, 한 번은 북경에서, 또 한번은 코펜하겐에서 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낯선 사람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인천에서 북경까지 가는 2시간도 안되는 비행시간 동안에도 발동해, 옆자리에 앉은 남자분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에 이른다.

크게 특별한 대화는 아니었다.

우리는 연락처 하나 나누지 않고 헤어졌다.


그런데 그 사람을 5개월 뒤, 2012년 2월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호스텔에서 만나게 되었다.

와우.

처음에는 한국인이라서, 그리고 나서는 뭔가 낯익은 느낌이 나서 유심히 보다가 서로 '어?' 했다.


그리고는...

별 일 없었다.

우리 둘 다 이 우연에 엄청 신기해 하면서 이번에는 연락처를 주고받고, 밤에 호스텔 라운지에서 이런 저런 얘기도 했던 것 같지만 거기서 끝.


3.

이 우연을 생각하다보면 또 생각나는 우연이 있다.


나의 첫 연애는 대학교 1학년 여름에 시작해 3학년 봄에 끝났다. 그리고 지금의 남자친구를 직장인 1년차 가을에 만나기까지, 약 4년간 연애를 못했다.

짝사랑만 주구장창했다.


이런 나를 딱하게 여긴 우리 엄마가, 나와 같은 대학에 다니던 엄마 친구 아들에게 나의 소개팅을 부탁했다.

그 분은 나한테 연락해 원하는 남자 스타일 등을 물어본 뒤 기다리라고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런, 소개팅 (해준다고 말하고 안 알아보는) 공수표라고 생각했다.


4.

그런데 아니었다.

그 분은 진짜 알아봤다.

그런데 막상 알아본 사람이, 그 분의 레이더망에 걸린 사람이 하필, 내 전 남자친구였다는 게 문제였다.


이 소식이 그 분의 엄마에게서, 우리 엄마로, 그리고 나에게로 전달되었다.


놀라웠다.


그런데 거기서 끝.

여전히 전 남친은 얼굴 한 번 마주칠 일이 없다.


5.

99의 우연도

1의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인연이 되지 않는다.


어떤 우연은 아무리 기가 막혀도, 우연일 뿐이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D-25. 우울증의 행동활성화 치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