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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Oct 26. 2017

D-4. 나도 나를 어찌하지 못해서

1.

어제는 엄마와 말다툼을 했다. 

발단은 내가 찬 바닥에 앉아서 맥북을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여자는 찬 바닥에 앉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고, 이 때문에 "침대 위에 앉으라"는 말을 2~3번쯤 하셨다. 

나는 귀찮았다. 

그래서 대답했다. 

"내 맘이야"(난 엄마에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쓴다) 

엄마는 이 말에 화가 나셨다. 

"내 맘이야"라는 말도, 그걸 내뱉는 말투도 마음에 안 드신단다.

그 이후로 서로 옥신각신 했다.

엄마는 내 말투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자신을 무시하는 느낌이 난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잔소리는 가끔 참기가 힘드며, 엄마 말투도 별로 좋지는 않다고 맞섰다. 

말을 하는 중에도 알았다. 

아, 내가 지금 나중에 후회할 짓을 하고 있구나. 

그런데 입에서는 계속 모진 말이 튀어나왔다.

그만 하자는 엄마 말에 끝까지 말대꾸를 했다. 


2.

냉랭한 기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가 자기 전에 귤이나 먹으라면서 하나 가져다주시고, 부루퉁한 표정을 귀엽게 짓고 가셨다. 

난 웃음이 나왔고, 그걸로 일단락은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는 자기 전에 혼자 우셨다고 했지만. 


3.

오늘은 원래 리딩큐어 수업에 가는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긴 했는데, 또 갈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회사에 가기 힘든 날이랑 비슷한 기분이었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우울증 증상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일단 일어나서 엄마가 시키는 대로 아침을 먹었다.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수업 책을 읽어보았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 차 있었다. 

수업을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수업에 가지 못했다.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고, 악몽을 꿨다. 


4.

아침에 먼 곳을 가는 게 나에게 무지 힘든 일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제는 오전 11시까지 용산에 가서 수업을 들었으니 아귀가 맞지는 않는 생각이다. 

내가 수업에 왜 못 가지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다음 주에 신혼여행 때문에 못 가는 것까지 포함하면, 총 4번을 빠지게 되어서 앞으로는 모든 수업에 전부 출석해야 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 

이 사실이 스트레스를 주긴 했지만, 그래도 남은 하루는 잘 보냈다. 


5.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 여전히 나는 어딘가에 주기적으로 가는 걸 못하는 사람인가?

서점을 운영하면서도 이러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단순히 아침에 일어나는 걸 무지하게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서점은 오후에 열어서 밤까지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6.

상담을 하다 보면 남의 생각을 들으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상담 몇 주 했다고, 조금은 내가 나를 잘 조절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랑 말다툼을 하고, 오늘 수업을 빠지면서, 아직 한참 겸손해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나도 나를 어쩌지 못하는 순간이 분명 있다. 

왜 그러했는지는 중요하면서, 또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결과는 일어났고, 나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나를 다독이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어쩌지 못하는 순간은 결국 지나가게 마련이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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