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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May 31. 2016

멜로디가 가사보다 중요할까

멜로디가 첫만남이라면, 가사는 애프터다.

1.

휴 그랜트와 드류 배리모어의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그남자 그여자 작사작곡(Music and Lyrics)>는 일주일 안에 유명 가수와의 듀엣곡을 만들어내야 하지만 작사에는 젬병인 왕년의 팝스타 알렉스(휴 그랜트)와 훌륭한 글쓰는 재주를 가지고 있음에도 상처가 되는 일 이후에 글을 쓰지 않던 소피(드류 배리모어)가 <Way back into love>라는 노래를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다.


작사를 하면서 주저하는 소피를 보면서 알렉스는 그냥 써제끼라고, 가사가 중요하긴 하지만 멜로디만큼 중요하진 않다고(They're just not as important as melody) 한다.

이 무신경한 말은 글쟁이 소피의 신경을 건드리고, 소피는 다음과 같이 대응한다.


출처 : http://www.neoearly.net/entry/멜로디와-가사로-사랑을-키워가는-그-여자-작사-그-남자-작곡Music-and-Lyrics


"멜로디는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거에요. 육감적인 끌림. 섹스 같은거죠."
(A melody is like seeing someone for the first time. The physical attraction. Sex.)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 그게 바로 가사에요. 그들의 이야기 말이죠. 그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것에 대해서요. 음악을 마법처럼 만드는 건 바로 이 둘의 조합이에요."(But then, as you get to know the person, that's the lyrics. Their story. Who they are underneath. It's the combination of the two that makes it magical.)


2.

나는 한동안 노래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 멜로디라고 생각했다.

음악차트에서 1위가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을 하겠지만, 적어도 계속 듣고 싶은 노래는 멜로디가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좋은 가사를 가진 노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한참 에이브릴 라빈, 미셸 브랜치 등의 팝가수를 좋아했다. 그들의 노래를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사전을 찾아가면서 가사를 번역했지만, 뜻을 이해한다고 의미까지 이해되는 건 아니었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든지, 외로움에 대해 얘기한다든지 커다란 주제는 알겠는데 내용이 깔끔하게 연결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작곡이 작사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악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아이돌도 작사를 했다는 이유로 "이번 앨범에는 제가 직접 참여해서 참 뜻깊습니다..."와 같은 말을 하곤 했다. 작사는 진입장벽이 너무 낮았다. 이미 작곡된 멜로디에 글자수 맞춰서 가사를 채워넣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반면 작곡은 뭔가 엄청나게 어려운 일같이 보였다. 정말 제대로 공부한 사람,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교에 와서 독학으로 작곡을 하던 친구에게 작곡하는 능력의 대단함을 엄청나게 예찬하니,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어차피 사람 귀에 듣기 좋은 멜로디를 만드는 데에는 어떤 패턴이 있어."


이 얘기를 듣고 나서는, 작곡도 뭔가 기본기를 다지고 나면 생각보다 쉽게 평타는 칠 수 있는 곡을 만들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곡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작곡을 할 줄 아는 사람에 대한 리스펙트는 여전하다.


세 번째는 가사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공감하거나 골똘히 생각에 잠길만큼 내 경험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물론 아직 창창한 나이지만) 내 이야기 같은 느낌을 주는 노래가 점점 많아졌다. 사랑을 할 때의 달콤함이나 이별의 슬픔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것 같은 외로움이나 우울함을 어루만져 주는 노래를 만나고 잠 못드는 밤의 벗으로 삼고는 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재생리스트에 담아놓고 제목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듣는 행동이 반복되는 노래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어제 전기뱀장어의 라이브를 들으면서 그동안 'I wanna thank you, you wanna thank you...' 라는 가사가 반복되어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노래라 생각했던 노래가, 제목은 <스테이크>이며 내가 땡큐로 들었던 가사는 알고보니 스테이크 먹고 싶다는,

'I want a steak, you want a steak, and we want a steak'와 같은 가사라는 걸 알고는 충격을 받았다.


역시 전기뱀장어의 <꿀벌>이라는 노래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반복되는 '어떻게 지내니, 니 공연 보러 서울 한 번 가야 하는데'라는 가사 정도만 기억하면서 '언제 한 번 밥먹자'와 같이 공허한 약속에 대해 비판하는 노래라고 생각했었다.

충격적이게도, 오늘 전기뱀장어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알게 된 <꿀벌>의 탄생 배경은 한 때 꿀벌이라는 별명으로 같이 재수생활을 했던 친구의 교통사고로 인한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그러고 나서 노래를 들으니 이제야

이제는 영원히 나이 들지 않을 니가 이상해
살다 보니 나를 그렇게 반가워해 준 사람이 그리 많진 않더라

라는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전기뱀장어 <꿀벌>

그러고 나니 이 노래는 나에게도 있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영원히 나이들지 않게 된 어떤 친구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꿀벌>은 예쁜 멜로디와 상관없이 슬픈 노래가 되었다.


4.

얼마나 많은 노래를 멜로디가 주는 첫인상만으로 판단하고 있었던걸까?

첫인상을 결정하는 외모의 역할을 하는 멜로디는 물론 노래에서 무척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노래를 진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번쯤 가사에 제대로 귀기울여봐야 하지 않을까.


그제서야 노래의 마법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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