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박일아 님의 이야기
<온 더 레코드>는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찾은 내담자들 중 철저히 동의하신 분에 한해 상담 내용을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익명화를 거쳐 이야기를 공유하는 매거진입니다.
한 달 정도 기분이 많이 다운되어 있어요.
무력하고, 답답해요.
뭔가를 먹기만 하면 잘 체하고요. 하루에 한 끼도 겨우 먹어요.
특별히 불행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행복하지도 않아요.
일상의 사소한 행복을 느끼는 감각이 마비된 것 같아요.
3년 전쯤 직장 생활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숨이 안 쉬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위가 운동을 못해서 소화가 안 되었고, 이명이 생겼어요.
증상은 신체적으로 표현되었지만, 정신적인 이유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어요.
제가 회사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했거든요. 정체성에 혼란이 왔고, 제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동료들은 잘 하고 있다, 누구라도 제 자리에 있으면 힘들 것이다-라고 했지만 제 몸 이 곳 저곳에서 이상 반응이 나타났어요.
그때 인생 첫 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상담 선생님이 빨리 회사를 정리하라고 지지해줬어요.
회사를 정리하고, 한의원을 다니면서 상담치료와 운동을 병행했어요.
심장을 옥죄는 증상은 많이 사라졌지만, 무력감이 계속되었어요.
회사를 그만둔 게 저를 좀 고립시켰던 것 같아요.
평소에 집순이거든요.
그때 한 모임에 나갔어요.
조금은 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그 당시 저는 글을 거의 못 썼어요. 어떤 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너무 잘 쓰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였던 것 같아요. 남들한테 잘 보이고 싶고, 자기만족을 잘 못하는 편이에요.
8개월 정도 쉬며 컨디션을 회복하고 있었는데 다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힘든 사건이 발생했어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할 태세에 돌입했어요. 평소에도 사소한 일엔 예민하고 큰 일에는 담담한 편이에요.
계약직으로 새로운 직장을 구했지만, 근무지 특성상 고립된 장소에서 혼자 일을 해야 해서 외로웠어요.
저보다 어린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해서 가끔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고요.
대인관계를 주제로 상담을 병행했어요.
그때 만난 두 번째 상담 선생님의 코칭이 직장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 이후에 계약이 끝나고 4개월 쉬면서 세 번째 상담을 받았어요.
내면에 힘이 길러지는 가장 인상 깊은 상담이었고 이제 스스로 많이 내려놓았고 단단해졌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지금의 직장을 구하게 되었어요.
이번에는 좋은 상사를 만나서 처음부터 무척 편안하고 좋았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사건이 하나 생겼어요.
직장 동료 중 한 분이 자신이 처리해야 할 일을 실수하고 저한테 뭐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제 업무 영역이 아니라고 전달을 받아서 안 한 것이었는데 말이죠.
굳이 따지자면 제가 도와줬어도 되는 상황이지만 이 일로 앞으로 제 업무가 늘어날까 봐 걱정되기도 했고 제가 많이 해본 적 없는 일이라 실수할까 봐 두렵기도 했어요.
그 일이 있은 후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다시 흐트러지기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하고, 사건이 있었던 그 분과 같은 부서 사람들은 다 싫어지게 되었죠.
밥을 먹어도 체했고요.
저한테 답답한 면이 있는 건 저도 알아요.
얼마 전에는 모델하우스 구경을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가슴이 답답했어요.
그냥 나가면 될 걸, 꾸역꾸역 참으면서 한 시간 이상을 버텼어요.
같이 간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고 싶었나 봐요.
한 날은 사람이 꽉 찬 대강당에서 강연을 듣는데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 나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앉은자리가 완전 중앙이라서 일어나지 못하고 바닥만 보며 강의가 끝날 때까지 참았어요.
사람들한테 주목받고, 폐를 끼치는 게 너무 싫어서요.
요즘 상담과 함께 병원도 가볼까 고민 중인데 약물치료는 최소 1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긴 것 같아 엄두가 안 나요.
무엇보다 저는 스스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문제 해결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기간 상담을 받아서라도요.
일아 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나 염려가 되어 적자면, 저나 제 글에 대한 댓글에는 대응을 하겠지만 일아 님에 대한 공격성 댓글은 무조건 삭제하겠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위로가 됩니다'
매거진 <온 더 레코드> 8화 마침.
글/ 김명선
- 수원에서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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