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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Lizzy Jun 07. 2018

인터뷰스쿨, 잠깐 쉼표

인터뷰를 위해 학습하는 학교 

1.

저는 수원에서 작은 책방 ‘리지블루스'를 운영하고 있는 김명선입니다. 각오를 하고 시작한 서점이었지만, 예상보다 손님이 없어 심심하던 찰나 미국에 리서치를 가는 보조연구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운좋게 합격하게 되어 2018년 3월 초에 2주 과정으로 미국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 제목은 <미국 메이커 교육 탐사>로, ‘메이커 교육'을 중심으로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SXSW edu 2018’ 컨퍼런스를 듣고 샌프란시스코에서 관련 기관을 인터뷰하는 게 현지에서의 일정이었습니다. 


2.

탐사 일정은 꽤 빡셌습니다. 3박 4일동안 매일 6~8시간 동안 컨퍼런스 강연을 듣고, 저녁에는 네트워킹 행사에 참여하고, 밤에는 오늘 얻은 정보를 취합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은 열심히 했지만, 컨퍼런스 자체에서는 좋은 정보를 얻기 힘들었습니다. 강연이 너무 짧거나, 기대했던 바와 다른 내용을 다루거나, 발표자의 준비가 미흡한 등 변수가 참 많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감동시켰던 내용은 컨퍼런스 강연 밖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컨퍼런스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접하게 되었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기관에 직접 방문해 본격 인터뷰를 하면서 계속 감동받았습니다. 

탐사 종료를 며칠 남기지 않고 저는 결심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인터뷰스쿨'을 만들겠다고.


3.

제가 인터뷰에 감동했던 이유는 인터뷰가 참 멋진 학습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어는 인터뷰를 통해 주제에 대해 3번 공부하게 됩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한 번, 인터뷰를 하면서 한 번, 인터뷰를 마치고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 총 3번 공부하고 들여다봅니다. 막상 적고 나니 모범생의 공부법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예습 - 수업 - 복습과 같이 3번 공부하는 모범생 말이죠. 모범생의 공부법의 단점은 예습이나 복습을 안해도 크게 티가 안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인터뷰는 다릅니다. 내가 준비해가지 않으면 질문이 없고, 질문이 없으면 인터뷰를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강력하게 사람을 학습하게 만드는 인터뷰에 첫 번째 매력을 느꼈습니다. 

인터뷰의 두 번째 매력은 내 호기심을 동력으로 삼는 적극적인 학습이라는 점입니다. 컨퍼런스를 듣고 인터뷰를 해서 더욱 대비가 되었던 것 같은데요. 컨퍼런스처럼 1:다 환경에서 저는 수동적인 청자 이상의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강연 자체가 엄청난 매력도와 흡입력을 가지지 않는 이상, 저는 곧잘 딴생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나의 수업이라고 봤을 때, 인터뷰는 전적으로 학생이 이끌어가는 수업입니다. 정보를 더 가진 자(인터뷰이)가 정보를 덜 가진 자(인터뷰어)가 이끄는 대로 자신의 정보를 건네주고, 상호작용 및 토론을 하는 형식이 됩니다. 


4.

저는 인터뷰가 학습의 강한 동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영어 공부와 접목시켜 다음과 같은 테스트 수업을 구성했습니다. 


목표 : 영어로 자신이 인터뷰하고 싶은 영어권 외국인을 인터뷰하기

수업 구성 : 
1) 자신이 관심있는 영역의 영어 자료를 공부
2) 공부한 내용을 영어로 수업 동료들에게 공유
3) TED 등을 무자막으로 들으면서 영어 청취를 연습 


수업은 1:2로 진행하는 한 반(A클래스)과 1:1로 진행하는 한 반(B클래스), 총 두 반을 운영했습니다. 


5.

A클래스의 학생들은 30대 후반의 부부였는데, 두 학생이 인터뷰스쿨을 받아들이는 데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공일공'님은 처음부터 놀라운 속도로 인터뷰스쿨에 적응해 신나게 자신이 설정한 주제를 영어로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학생인 ‘루시'님은 주제를 정하는 데 계속 난항을 겪었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주어진 것만 공부하다가 자신이 스스로 공부할 주제를 설정하는 게 어렵다고 토로했습니다. 


또한 수업을 지속하면서 본래 목표였던 인터뷰는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학생들은 이 수업을 프로젝트 기반의 영어 수업이라고 생각했을 뿐, 자신이 진짜 영어로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B클래스에서도 비슷한 문제는 지속되었습니다.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 인터뷰스쿨을 시작한 ‘애봉'님은 매주 주제와 관련한 자료를 찾는 것을 힘들어했고, 쉽게 인터뷰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6.

A클래스의 6번째 수업, 그리고 B클래스의 4번째 수업 때 저희는 진지하게 지난 과정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두 가지가 기존 인터뷰스쿨의 큰 문제점 두 가지였습니다. 


- 인터뷰 스쿨을 영어랑 접목했더니, 영어가 인터뷰를 압도해 버린다. 

- 인터뷰를 통한 학습을 경험하지 않은 학생들은 인터뷰를 왜 해야 하는지 동기부여를 받지 못한다. 


특히 인터뷰스쿨을 힘들어했던 루시 님의 의견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 언어를 학습하기 위해 또다른 지식을 공부해야 하는 게 힘들었다

- 공부 소스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 뭔가 실패한 느낌이 든다 


많은 대화를 통해 A, B클래스는 방향 전환(피봇)을 결정했습니다.

인터뷰를 잠시 미뤄두고, 분명한 아웃풋을 만들어 보자! 라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B클래스는 아예 저와 애봉님이 같은 관심 주제(교육 & 뇌과학) 에 대해 공부하고 글 한 편을 쓰는 것으로, A클래스는 각자 4주간 한 기관이나 인물을 정해 이를 공부하고 번역해 소개하는 글을 각자 쓰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7.

이후 A클래스는 4번의 수업을 더 진행했고, B클래스는 1번의 수업을 더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진행자인 제가 동기부여를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가 좋아서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인터뷰를 하는 일은 점점 요원해져갔습니다. 저 혼자 ‘여러분 우리는 인터뷰를 해야 해요!’라고 외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8.

그래서 저는 초기에 생각했던 ‘학습법'으로서의 인터뷰스쿨은 잠시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A클래스와 B클래스 모두 한 번 더 방향 전환을 해서 만남은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우선 A클래스는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를 인터뷰하는 ‘인터뷰모임'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3명이 돌아가면서 인터뷰어, 인터뷰이 그리고 관찰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죠. 목적이나 목표를 딱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인터뷰를 하고 인터뷰를 당하면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B클래스는 애봉 님이 가을에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끊어서 현재 영어 공부에 대한 의지가 강한 상태로, 아예 영어 공부를 목표로 하는 ‘샌프란스쿨'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사실 인터뷰스쿨 때와 수업 구성(스몰 토크 + 콘텐츠 기반으로 영어 수다 + 테드 강연 들으면서 듣기 훈련)은 비슷하지만, 자료를 찾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각자 읽고 싶은 영어 책을 선정해 일정 부분 읽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9.

인터뷰스쿨은 잠시 쉬어가지만, 저는 여전히 인터뷰를 참 좋아하고 앞으로도 인터뷰를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다른 분들과 인터뷰를 매개로 함께할 수 있는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또 실행에 옮겨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일공이 생일선물로 만들어준 인터뷰스쿨 로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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