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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Jun 18. 2018

ep09. 갈 곳을 잃은 느낌이에요

20대 이직 준비 중인 여지강 님의 이야기 

<온 더 레코드>는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찾은 내담자들 중 철저히 동의하신 분에 한해 상담 내용을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익명화를 거쳐 이야기를 공유하는 매거진입니다. 


이직을 준비 중인데, 탈락했어요


오늘 기분은 착잡해요. 

작년 12월에 퇴사하고 계속 이직을 준비 중인데 오늘 탈락 연락을 받았거든요. 



첫 직장 생활은 꼬인 게 많았어요


첫 직장은 지방의 기관이었어요. 제 전공이 특수직렬이라, 회사에서는 이 직무로는 저를 처음 뽑는 것이었어요. 저를 가르쳐 줄 사수도 없었고, 업무를 제대로 할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았죠. 

제가 뭘 시도하려고 해도 재정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곳도 아니었어요.

언젠가부터 저는 잡다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전락해버렸어요. 

업무에서도, 회사에서도 만족할 요소를 찾을 수 없어 이직을 계속 준비했어요. 


회사 생활을 소홀히 하게 되었고, 내부에 저를 드러내 놓고 적대시하는 분도 생기게 되었어요. 

수직적인 회사 문화상 사근사근한 성격이 필요하고 줄도 잘 서야 하는데, 저는 그런 걸 잘 못했어요. 

폭언을 자주 들었고, 업무 관련해 혼도 많이 났죠. 

그때 들었던 폭언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밤에 잠을 못 자게 할 정도예요.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도 똑같은 일로 고생하지 않을까요


퇴사한 당시에는 후련했는데, 이직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어요. 

떨어지면 착잡하고 막상 서류가 붙고 면접을 보러 가는 등 과정이 진행되면 불안해요.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또 똑같은 일로 고생하겠지? 하는 마음이요. 


일방적으로 받는 배려가 미안했어요


연상의 남자 친구와 사내 연애를 했었어요. 

저를 잘 받아주던 좋은 사람이었는데, 결국 헤어졌어요.

성격적으로는 잘 맞았는데 남자 친구는 그 회사를 계속 다닐 거고, 그 사람들의 결혼식에 가야 할 거고, 저는 전 회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건너서라도 듣는 게 싫었어요. 

또 지방이니 같이 살려면 제가 내려가야 했을 텐데 그것도 싫었고요.


무엇보다... 많이 미안했어요.

남자 친구는 저를 참 많이 배려해주고, 저는 그 배려에 계속 기대고. 

미안해서 헤어졌던 것 같아요.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불안하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기분이 들어요.

한 달 동안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기도 했었어요.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요. 


외향적 성격이 아니어서 어릴 때부터 힘들었어요. 

지금 직무를 전공으로 택한 것도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했던 건데, 결국 이 직무도 정치력과 추진력이 필요한 것이더군요. 

다른 전공을 새로 공부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모르겠어요


미움받기 쉬운 성격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사회성이 떨어지고, 그런데 자기 고집은 있고요.

살가운 성격도 아니에요.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하고요. 

남 비위를 잘 맞추지도 못하고, 혼자인 걸 편안해하고요. 


그렇지만... 제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에요.

사회적으로 성공한다거나, 인간관계가 넓어지길 바라지 않아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인간관계는 어릴 때부터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인 성격이 아니었어요. 

친구들한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성격도 아니고요.

부모님한테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혼자 걱정은 많이 해요. 생각도 많고요.

스트레스성 질병도 생겼어요.

돌발성 난청이나, 공황장애 같은 느낌이요. 


우울증도 걱정이 되는데, 병원에 가면 기록이 남을까 걱정되어요. 


모르겠어요.

내가 정말 취직을 다시 하고 싶은 건지도. 

어떤 인간관계를 갖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어요.




지강 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나 염려가 되어 적자면, 저나 제 글에 대한 댓글에는 대응을 하겠지만 지강 님에 대한 공격성 댓글은 무조건 삭제하겠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위로가 됩니다' 

매거진 <온 더 레코드> 9화 마침. 



글/ 김명선

- 수원에서 심리상담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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