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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Dec 20. 2018

수리야와의 대화

1.

약 1년 반 만에 결혼하기 전까지 1년 동안 기타를 배웠던 수리야를 만났다. 

마포구청 쪽에 사는 수리야가 수원 골목에 있는 내 서점 리지블루스까지, 헤맨 시간까지 포함하면 3시간이 걸려 와 주었다. 우리는 국수를 같이 먹고, 책을 매개로 한 대화를 나눴다. 수리야가 마더 피스 카드를 이용해 타로 카드도 봐주었다. 수리야는 다음 일정에 늦으면서까지 최대한의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내다 가주었다. 


2.

산스크리트어로 수리야는 태양을 의미한다고 한다. 오늘 수리야와의 만남은, 그녀의 별명처럼 햇볕을 가득 쬔 느낌이다. 

우리는 결혼 생활에 대해, 시댁에 대해, 활동가로서의 삶에 대해, 우울증에 대해,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수리야는 우울 또는 우울증을 경험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수용"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우리가 아픈 이유는 누군가에게 또는 세상에 의해 온전히 수용받는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공부를 잘했던 나는 공부를 잘하는 나의 특징으로만 수용되었기 때문에, 뭔가를 잘 해내는 나로서만 수용되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게 된 상태의 나를 인정하지 못했던 건 아닌지 의문을 던졌다. 


나의 성격을, 나의 특징을, 내가 잘하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를 좋아한다는 말도 했다. 


3.

나는 의심하게 되었다.

나의 존재를 좋아한다는 수리야의 마음을 의심한 게 아니고, 

내가 누군가를 존재 자체로 좋아하는 사람인지 의심이 되었다. 

심지어 그게 나일지라도. 


4.

여름에 썼던 내 책 <리지의 블루스>에 이렇게 적어놓은 부분이 있다.


나는 과연 존재만으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일까.
우리는 정말 태어난 자체로 존엄한 것일까. 


나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그렇지만 오늘 햇볕을 쬐고 나니 조금은 의심의 날이 무뎌진 것 같다.

그래, 그럴지도 몰라-라고 생각해버리고 싶은 마음. 


5. 

수리야는 마더 피스 타로 카드를 이용해 타로를 봐주었다. 그녀는 타로 카드를 손거울처럼 스스로를 비춰보는 도구로 생각할 뿐, 미래를 예언하는 도구로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나의 질문은 앞으로 나와 우울증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사진 속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카드가 각각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카드다.

첫 번째 카드는 완벽한 사람의 모습이다. 음식도 돈도 충분히 갖추고 자신이 그린 이상 속에서 머물러 있다.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두 번째 카드는 결단을 내리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데 도움이 필요해서 휘파람으로 말을 호출했다. 

세 번째 카드는 비전을 구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상태로 무리를 나와서 자신의 비전을 찾아가고 있다. 

네 번째 카드는 조력자 카드다. 9개의 불 지팡이를 다루는 할머니 카드가 나왔다. 나한테 어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두려워하지 말고 그 기회를 잡으라는 메시지 같다고 한다. 


카드의 이야기를 맞춰보자면 이렇다.

'완벽함'이라는 스스로의 기준을 가지고, 다른 기준은 용납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 

이제는 결단을 내려서 변화하려고 하는데, 혼자만의 힘으로는 힘들어서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 다행히 주변에는 기꺼이 나에게 와주는 조력자가 있다.

앞으로도 나는 내 영역을 갖추고 삶의 방향을, 우울과 함께 살아가는 방향을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내 안에 존재하는 9개의 불 지팡이를 다룰 수 있는 성숙한 능력이 이를 도울 것이다.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나는 혼자다. 

하지만 언제든 조력자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세상 속에 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조금은 덜 외롭게 살아갈 건가 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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