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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Apr 09. 2018

2018년 4월 9일 새벽 5시 50분

1.

잠을 자다가 배가 아파서 일어났다.

남편은 그때서야 게임을 하다가 자려고 누웠다.

우리는 가끔 자기 전에 왕수다를 떠는데, 오늘이 딱 그날이었다.

끊이지 않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 시간이 되었고,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아 그냥 일어나서 글을 쓰게 되었다.


2.

다섯 번째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행동으로 나타난 건 한 2주 정도 되었다.

감정적으로 힘든 건 그보다 1주 정도 빨리 왔다.


너무 많은 일을 저글링 하듯 해냈다.

매일 펑크를 내지 않기 위해 일 단위, 주 단위로 계획하고 움직였다.

(쓰고 나니 많은 분들이 그렇게 사는 것 같다)


결국 펑-하고 터져버렸다.

터지고 난 뒤에 버려보았자 소용이 없다.

이미 바퀴는 터진 이후다.


3.

이번 우울증은 첫 번째 우울증과 비슷하다.

당황스럽게 손을 쓸 수가 없고, 

고통이 실질적으로 느껴진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누워있는 상태에서 일어나고 싶은데 공기가 나를 짓누르고 있고

씻고 싶어서 옷장에서 속옷까지는 꺼냈는데, 화장실 안에 거대한 거미가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고

일을 해야 하는데 손톱이 다 빠져서 키보드를 칠 수가 없다.


이렇게 설명해도 남편도 이해를 못한다.

나의 상태로 인해 나 다음으로 고통받는 존재가 남편인데, 그러한 남편도 나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 자체로도 절망적이다.


하루만, 단 하루만 내가 느끼는 기분을 남편이 느낄 수 있다면.

그렇다고 해도 뭐가 달라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요 근래 내가 받은 위로 중 그나마 쓸만했던 것은 결국 정신과 선생님의 '힘든 시간을 지나가고 있군요'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힘들다는 걸 알아준다는 것.

그것이 주는 위안.


4.

남편은 언젠가부터 나를 이해하는 것을 멈추었다고 한다.

포기랑은 좀 다른 느낌이다.

방향을 바꾼 느낌이랄까.


내 아픔에는 공감이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왜 아픈지 이해는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이해한다는 착각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착각해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남편이 엄마랑 가장 크게 다른 점이며, 내가 이 시기에도 남편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이유다.


5.

때때로 남편은 내가 주는 가치가 아닌 내 존재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한다.

결혼이라는 게 이 사람한테는 그런 의미였다.

이 사람이 나한테 어떤 가치를 줄 수 없어도 책임지고 돌봐야 하는 존재.(내가 상정하는 상황은 바람을 피우는 등의 배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의 사고로 오롯이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마음으로 결혼한 게 아니어서 때로 미안하다.

나는 그냥 이 사람이랑 있으면 좋아서, 

이 사람이랑 사는 게 가족이랑 사는 것보다 좋아서 결혼했다.

건강할 때는 잘 지낼 수 있겠지만 

역경이 닥쳤을 때도 나는 이 사람에 대한 사랑을 지킬 수 있을까.


그러려고 노력한다.

이 사람의 사랑을 나도 따라가려고 노력한다.


6.

평온하다.

손톱이 멀쩡해서 글도 쓰고.

화장실에 거미도 안 보여서 씻을 수도 있다.

공기도 가벼워서 얼마든지 누웠다가 일어날 수도 있다.


이렇게만 지냈으면 좋겠다.


이렇게만.

이렇게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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