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쓸모 판단이 자존감을 해친다
1.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태는 뭔가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없는 상태이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일은 글쓰기, 책 읽기, 영화보기, 웹툰 보기이다.
어느 순간부터 먹방 예능과 틀에 박힌 공식으로 점철된 드라마에 흥미를 잃어 TV가 재미없다고 생각한다.(도깨비는 열심히 봤고, 원래는 한국 드라마의 열렬할 팬이라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위에 언급한 4가지 행동은 글쓰기로 갈수로 적극성이 높아지고, 웹툰 보기로 갈수록 수동성이 높아진다.
웹툰을 볼 때의 나는, 핸드폰을 쥐고 침대에 누워서 가장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취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렇게 웹툰을 보는 것조차 싫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그냥 잔다. 자고, 자고 또 자서 12시간 넘게 잘 때도 종종 있다.
피로를 재충전해야 하는 주말에 자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은데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시간을 버린다는 느낌으로 잠을 잔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격렬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고양이의 짤이 유행이었던 만큼,
이렇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감정은 피로도가 높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멍 때리는 걸 잘 하지 못한다. 매우 바쁘다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는 건 반갑지만, 그냥 눈을 떴는데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가 전혀 달갑지 않고 그 많은 시간이 버겁게 느껴질 때.
그럴 때는 참 무섭고 두렵다.
2.
같이 일하는 분들 중 일에 대한 열정이 굉장히 높은 분들이 있다.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인생을 걸 수도 있다"
와 같은 말을 하시며 이 일이 얼마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지 얘기하신다.
나도 일에서 의미 찾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현재 하는 일에 저렇게 말할 정도로 강하게 동기 부여되어 있지는 않다.
'그냥 내가 여기서 찾을 수 있는 의미는 여기까지 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는 분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내 일을 열심히 하면 좋을 텐데, 내 생각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비교"로 나아간다.
저런 수준의 열정이 없는 나는 이 일을 할 자격이 없는 건 아닐까
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순식간에 나 자신이 이 일을 하는데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니라고, 나의 쓸모를 격하시켜버린다.
"꼭 필요한"이라는 말은 나에게 매우 버겁다. 회사라는 구조에 속해있는 이상 나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으므로(이렇게 생각하는 게 슬프긴 하지만)
하지만 "필요한" 존재라는 말은 받아들이고 싶다. 나는 현재 하는 일을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울증 때문에 출근에 어려움을 겪긴 하지만, 할 때는 열심히, 잘 하려고 노력하면서 일을 한다.
그러므로 내가 저렇게 생각하는 분들보다 열정이 부족해 엄청 대단하게 일을 해내지는 못할지언정, 나는 무언가 필요한 일을 수행한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필요한 존재다.
어찌 보면 참 간단하고 당연한 일을, 나는 어렵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3.
(...)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여러분처럼 "쓸모가 있냐 없냐"라는 질문 앞에 선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책상을 치우시거나 이사를 갈 때, 가지고 있는 모든 이러저러한 물품에 대해서 판단하시죠?
쓰레기일까, 아닐까. 익숙한 일이죠. 그런데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잖아요. 그건 온몸으로 느끼고 있거든요. 존엄이 아니라 쓸모가 우리 삶의 규칙이 되어 버린 건데요, 사실 헌법은 그렇지 않잖아요.
제가 항상 주장하는데, 헌법 앞에서 당신은 똑같습니다.
장애인이든 아니든, 일등이든 꼴등이든, 저성과자든 고성과자든 사람 그 자체가 존엄하기 때문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당신은 존엄해야 합니다.
- 은수미 의원, <여성의 일, 새로고침> 201페이지
아직은 내가 왜 그렇게 쓸모로 나를 판단하는지, 왜 그렇게 1분 1초를 유용하게 쓰고 싶어 하는지 잘 모른다.
위 문장에 따르면 경쟁에 익숙한 현 대한민국의 20대로서 당연할 수도 있고.
비장애인에, 일등에, 고성과를 내는데 익숙한 사람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오늘 상담을 하면서 나의 이러한 매우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비교할 수도 없는 대단한 쓸모를 가진 사람(심지어 나보다 나이가 많아 더 쓸모 있는 게 지극히 당연한)과 비교하는 마음이,
나의 출근을 저해하고 내 우울을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는 걸 발견했다.
"전 필요한 사람이었네요"
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런 내가 바보 같은데, 바보 같은 건 아니라고 선생님은 이야기한다.
4.
이렇게 글로 쓴다고 내 인지 패턴이 바로 바뀌는 건 아니다.
'결함을 받아들이기' 글을 썼다고 항상 결함을 받아들이는 건 아니듯이.
내 브런치 첫 글이 '필요되어지는 것(needed)에 대한 이야기'인 게 은근 소름 돋는다.
영화 인턴을 보면서 왜 나는 그렇게 needed라는 단어에 꽂혔던 걸까.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조금씩 노력하려고 한다.
내가 언제 어떻게 존재하든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위해.
<끝>
글/김명선
- 수원에서 인터뷰서점 '리지블루스'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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