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상담 경험에 대한 기록
1.
세 번째 우울증이 지나갈 무렵,
심리학을 전공한 가까운 지인이 강력하게 심리상담을 추천했다.
휴직을 했다가, 퇴직을 했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구석을 암담하게 떠도는 시간을 지나 아르바이트를 시작할만큼 나름의 에너지를 회복한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방"의 목적으로 심리 상담을 시작해 보았다.
2.
처음 심리상담을 받은 곳은 첫번째 직장의 근처에 있던 신경정신과에서 운영하던 곳이었다.
1년 정도 그 병원을 다니면서도 심리 상담을 운영하고 있는지 몰랐는데, 물어보니 알려주었다.
비용은 50분, 또는 1시간에 9만 6천 얼마였던 걸로 기억한다.
전문 심리 상담사와 마주보고 이야기를 했다.
3.
처음 상담을 받던 나는 "심리 상담이 얼마나 좋나 보자-"는, 오만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기대감은 커녕, 이렇게 비싸게 받으면서 얼마나 어떻게 나를 도와줄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심리 상담 선생님은 말을 아끼는 분이었다.
1주일에 1회씩 받았는데, 3주째까지 내 얘기를 듣기만 하셨다.
그렇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 회사에 대한 이야기, 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처음 상담을 받고 나서는 "그냥 친구한테 떠들어도 될 이야기를 왜 돈 주면서 누군가한테 해야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는 아무한테도 하지 못할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니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후련함을 주지는 못했다.
네 번째 상담을 가면서 나는 상담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 선생님이 내 마음을 깊이 파고드는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어떤 생각의 전환을 일으키는 그런 질문.
그렇게 2회를 더했고, 새로운 회사를 다니게 되어 상담을 그만두게 되었다.
선생님은 말했다. 다음 번에는 꼭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찾아와달라고.
4.
네 번째 우울증이 시작되고 나서는 수원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평일에 병원을 다니는 게 근무 시간에 많은 지장을 주었기 때문이다.
토요일에 다닐 목적으로 서울이 아닌 수원에서 병원을 다녔고, 이번 병원에 상담에 대해 물어보니, 의사 선생님이 직접 상담을 한다고 했다.
비용은 45분에 10만원.
그리고 선생님은 주2회 상담을 권했다.
많이 부담이 되는 비용이긴 했지만, 시작해 보았다.
이번 선생님은 저번 상담사 선생님보다는 말을 많이 하시는 편이었다.
매 상담이 끝날 때마다 "그래서 오늘 상담에서는 어떤 게 정리된 느낌인가요?"라고 질문을 던지며 내가 나의 인지적 오류를 스스로 찾게끔 유도하셨다.
매 상담이 듣고 끝나기 보다는, 44분의 상담(내가 내 이야기하기)과 1분의 처방으로 구성되었다.
때로는 처방 시간이 5분 정도 되기도 하고, 두달 넘게 진행을 하니 이제는 가끔 썰전을 선생님과 펼치기도 한다.
5.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상담선생님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내가 왜 그 때 그렇게 생각했는지 또는 행동했는지.
뭐가 두려워서 그렇게 했던 것인지.
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뒤에 어떤 메커니즘이 숨어 있는지.
6.
이번 우울증이 워낙 오래 가는지라 엄마는 병원을 바꿔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나는 바꾸지 않고 있다.
느리지만 나아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고,
상담사를 바꿔봤자 또다시 엄마, 아빠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때로 상담 선생님이 나의 로그 저장소라는 생각도 든다.
가능하면 상담이 끝난 후 회고 격으로 일기를 쓰면서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하는 편이지만, 때로는 그냥 흘러가게 두기도 한다.
우리의 대화는 상담자인 선생님과 내담자인 나 사이에만 남아 있다.
7.
어느덧 상담을 받는지 세달이 되어가고 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기도 했고, 상담료에 대한 부담 때문에 주2회에서 주1회로 상담을 줄였다.
운좋게 괜찮은 한 주를 보낼때는 상담을 가면서 '내가 왜 가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상담을 가는 것조차 너무 힘든 날에는 이만 겨우 닦고 택시를 타고 가면서 뭔가 구원을 바라는 마음으로 가기도 한다.
내담자마다 맞는, 흔히 말하는 케미돋는 상담자의 특징이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상담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판단하지 않는다.
-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본다. 상담자에게조차 판단받는다는 느낌을 받아버리면, 오래 갈 수 없다.
- 두번째 상담 선생님은 첫번째와 다르게 나를 마주보지 않고, 내 뒤에 앉아있는다. 조그만 표정 하나에도 판단받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기 때문에 이 구도가 참 좋다.
2) 심리적 거리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야 한다.
- 가끔 남자친구나 엄마가 내 상담을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은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상담자를 너무 멀게 느껴지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다.
3) 답을 찾아주지 않고, 스스로 찾게 한다.
- 아마 상담을 통해 찾아내는 답들은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뻔한 소리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 뻔한 소리가 내 스스로 내린 결론이라면 효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8.
우울증이나 기타 정신 질환 치료에 상담 치료가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질환은 약물치료로도 충분히 호전이 된다.
하지만 자꾸 질환이 재발되고, 그 원인에 좀 더 깊이 다가가고 싶다면 심리 상담도 고려해볼만한 하나의 치료법이다.
무지 비싸지만,
괜찮은 상담자를 만날 수 있다면,
그리고 때로는 보기 싫은 나도 만날 용기가 있다면,
시작해볼만하다.
<끝>
글/김명선
- 에세이 <리지의 블루스> 독립출판
- lizzyblues0330@gmail.com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