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데이트
1.
로맨스 영화가 당기는 토요일이었다.
왓챠에서 보고 싶은 영화로 기록해놓은 리스트를 쭉 보다가 무려 16년 전인 2003년에 제작된 영화를 고르게 되었다. <왓 위민 원튼>, <로맨틱 홀리데이>, <인턴> 등 섬세한 감성의 로맨틱 코미디를 제작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로 잭 니콜슨, 다이앤 키튼, 키아누 리브스 등이 출연하는 영화다.
2.
#줄거리(스포일러 있음)
잭 니콜슨은 회사를 10개 정도 소유한 성공한 사업가이자, 60대가 되었음에도 2030 여자들만 만나는 호색한으로 등장한다. 경매를 통해 만난 여자 아만다 피트와 그녀의 엄마 별장으로 놀러 갔는데, 때마침 글을 쓰기 위해 별장에 와 있던 엄마 다이앤 키튼과 마주치게 된다. 다 같이 저녁을 먹은 뒤 잭 니콜슨은 순간적 심장 마비로 쓰러지게 되고, 병원에서 실려가게 된다. 담당 의사는 너무나 섹시하고 매력적인 키아누 리브스! 그는 다이앤 키튼의 엄청난 팬이었다며 하트 뿅뿅한 눈빛을 던진다. 병세가 호전될 때까지 잭은 다이앤의 별장에 같이 머물게 되고, 둘은 가까워진다. 그렇게 동침이라는 거사를 치르고 다이앤은 잭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잭은 '어떻게 남자 친구가 되는지 몰라요' 등의 대사를 던지며 다이앤을 계속 실망시킨다. 실연의 아픔을 연극 대본으로 승화시킨 다이앤은 20살 연하의 키아누 리브스와도 연인이 된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사이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잭 니콜슨과 다시 연인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
3.
영화의 러닝 타임은 2시간 정도인데, 액션 씬 하나 없이 잔잔한 드라마로 쭉 이어지니 꽤 길게 느껴졌다. 남편은 중간에 눕기도 하고 잠들기도 했는데, 재미없어서 그런 줄 알았더니 끝나고 나서는 재밌었다고 한다. 다만 지나치게 개방적인 주인공들의 가치관(딸의 남자 친구와 연인이 되는 설정 등)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하겠다고 했다.
난 전형적인 로맨스 코미디 영화와 이 영화가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대부분의 영화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구구절절 그려낸다면, 이 영화는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영화 중간에 딱! 배치해 놓고 그 이후에는 두 사람이 자신의 사랑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다이앤 키튼은 쉽게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지만, 잭 니콜슨은 이게 사랑이라는 걸 모른다. 왜냐하면 그동안 숱한 여자들을 사귀어 보긴 했지만, 사랑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60대에 만난 첫사랑에 그 역시 당황하고, 놀란다.
남편은 의사로 등장해서 한결같이 다이앤 키튼을 좋아하다가 나중에 멋지게 보내주기까지 하는 키아누 리브스를 '사기캐'라고 칭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스펙(?)으로 따지면 잭 니콜슨을 압도하는 키아누 리브스를 두고 잭을 선택하는 다이앤의 행동을 사랑이 아니라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머리로 고르는 사랑이 아니라, 마음이 가는 사랑이었나 보다.
4.
남편이 고른 명장면은 다이앤과 잭이 섹스하는 장면에서, 항상 터틀넥을 입는 다이앤이 자신의 옷을 가위로 잘라달라고 하는 장면이다. 다이앤의 터틀넥은 상처 받을 수 있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상징 같은 것인데, 그것을 찢어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에서 자신을 해방시키고 싶은 마음을 느꼈다고 한다. 또 스스로 찢는 게 아니라 잭의 손을 빌어 찢는 점에서 잭에게 자신의 마음의 벽을 허물겠다는 의미로도 느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상처 받을까 봐 만들어 두는 마음속 벽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고른 명장면은 조금 자잘하지만, 잭이 병원에 실려갔을 때 비아그라를 안 먹은 척하다가, 약물을 투여하면 문제가 생기다는 말을 듣고 먹었다고 실토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여러 번 변주되어 나오는데 볼 때마다 웃겼다.
5.
별점과 한줄평은 다음과 같다.
- 잠만보 아내 : 3.5점 / 사랑에 빠진 나를 인정하는 것의 어려움
- 잠만보 남편 : 3.5점 / 직업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사랑에서는 낙제점이었던 남녀의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