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선 Dec 21. 2016

담담하게 죽음에 직면한 의사의 이야기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1.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긴 통근시간을 채우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잠자기가 가장 대표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이고, 스마트폰으로 이러저러한 일을 하거나 놀기가 그 뒤를 잇는다.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옵션이지만 쉽게 실천하기는 어렵다. 일단 나는 버스를 타는 시간이 길고, 버스처럼 흔들리는 곳에서 책을 읽으면 멀미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아마존에서 Audible이라는 오디오북을 판매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책값보다 비싸고 다운로드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 단점이지만, 전문 성우가 재미있게 영어 책을 읽어주어서 영어 공부 겸 몇 권째 사서 읽고 있다.

이 책 역시 그렇게 통근길에 오며 가며 본 책이다. 정확히는, "영어로 들은" 책이다.

내 영어 실력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이 책에는 온갖 의학 용어가 난무하기 때문에 틀리게 이해한 부분도 꽤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밤 집에 오는 길 내내 눈물을 흘릴 만큼, 주인공의 죽음에 몰입해서 들었다.

너무 크게 울었는지, 옆 사람이 자리를 옮겼다.


2.

이 책은 한 남자가 폐암에 걸려 죽는 이야기다.

특이한 점은 그 남자가 메디컬 스쿨에 진학하기 전에 영문학을 전공해서 글솜씨가 출중하다는 점, 그리고 신경외과 의사였기 때문에 그의 직업 매일 누군가의 죽음과 마주해야 했다는 점이다.


매일, 매시간, 매 순간 이 지구 상에서 누군가는 죽고, 또 누군가는 태어날 것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그 순에 가장 가깝게 있어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죽음은 낯설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우리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건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죽는다고 생각하며 살지는 않는다.

앞길 창창한 30대의 의사 폴 역시 그러했다.


3.

처음에 암 진단을 받고 그는 일을 그만두었다.

일단 치료에 집중했고, 몇 개월 뒤 다시 진단을 받았을 때 종양이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그는 고민한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그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남은 시간에 따라 결정하려 한다.

애초에 그는 20년을 의사로, 20년을 작가로 살고 싶었지만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건 명백하니까.


6개월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할 것을,

2년이 남았다면 책을 쓸 것을,

10년이 남았다면 다시 외과의가 되리라고, 그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분명하게 남은 시간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 역시 의사이기 때문에 그걸 분명하게 알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는 일단 의사로 돌아간다. 어지럽고,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의 대부분을 바쳐온 소명을 다하기 위해 의사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부인과 아이도 가진다.


그는 암 선고를 받은 환자였지만, 최대한 그의 일상을, 삶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더 이상 체력이 허락하지 않아 수술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책 집필에 최선을 쏟으며 생의 마지막까지 살아낸다.


하지만 그의 책은 완결되지 못한다.

버스에서 무심코 듣다가 갑자기 여자로 내레이터가 바뀌면서 그의 부인이 쓴 에필로그가 나와서 깜짝 놀랄 정도로, 책의 본문은 갑작스럽게 끝이 난다.

에필로그에 따르면 그의 죽음도 이렇게 갑작스러웠다고 한다.


딸 Cady가 태어난 지 8개월 이후에 그는 갑작스러운 암의 전이로, 예상치 못이른 죽음을 맞이한다.


4.

故 스티브 잡스의 명언 중 다음과 같은 게 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오늘 하려던 일을 할 것인가?


고인에게 미안하지만, 그리고 한 때는 이 말에 괜히 찔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그건 개소리야!!!


평범한 직장인 중에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인데 회사에 출근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일단 분명한 건, 난 아니라는 거다.

오늘이 내 삶의 갑작스러운 마지막 날이 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내가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측정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 질문은 아니다.


난 대체할 질문을 이 책에서 찾았다.


10년 뒤에 죽는다면, 오늘 하려던 일을 할 것인가?


매우 적은 사람한테 물어본 거라 자신은 없지만, 사람들은 6개월 뒤에 죽는다면 가족과 함께하며 그동안 못 가본 곳을 여행하는 삶을 선택했고, 2년 뒤에 죽어도 뭔가 하고 싶은 일들만 하다 죽을 거라 했다.

하지만 10년 뒤에 죽는다면, 당분간은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것 같다고 했다.

10년을 살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돈이 필요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난 그래도 이 질문을 마주해 원래 계획한 오늘을 살겠다고 한 사람은, 지금 많이 후회할 삶을 살고 있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10년 뒤에 죽는다는 걸 알아도 오늘을 이렇게 보게 아깝게 느껴진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본다.


어떻게 하든, 시간은 흘러가지만.


<끝>

매거진의 이전글 꿈의 대가에 대한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