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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Lizzy Apr 18. 2019

#12. 녀석처럼

김선용 님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3인칭 주인공 시점>은 1시간의 1:1 인터뷰 진행 후 짧은 소설을 써드리는 프로그램입니다. 소설은 인터뷰이의 동의를 받아 익명화되어 배포합니다. 배포된 소설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녀석처럼








1. 

  그 녀석과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공부는 반에서 5등 정도 했고, 깔끔한 외모를 가졌다. 조금 마른 편이지 허우대는 멀쩡해 보였는데, 보기와는 다르게 약골이었다. 백 미터를 한 번에 달리지 못할 정도로 호흡기관이 약했고, 응급실에도 종종 실려갔다. 그래도 천성은 밝은 놈이었다. 이 정도 아픈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 학교로 돌아왔다. 그런 밝음이 좋아서, 나는 계속 그 녀석 주위를 맴돌았다. 가깝게 지내기는 했지만, 나는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친구는 아니었다. 그렇게 되기에 나는 너무 어두웠고, 공부도 못했고, 잘난 구석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를 이렇게 생각하는 나의 자격지심이 나의 매력을 떨어뜨렸는지도 모른다. 무튼, 녀석은 내가 좋아하는 만큼 나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친구였다. 내가 녀석을 계속 따라다녔으니까. 다행히 집이 같은 방향이어서 등하굣길을 함께 했고, 같은 학원을 다녔다. 


2. 

“수능 잘 봤어?”

“그냥 그렇게 봤다. 너는?”

“나도 뭐…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교는 갈 수 있는 거 아니야?”

“야, 우리 집 사정 알잖아. 서울대 갈 거 아니면 서울 못 가. 아마 대전에 있는 대학교로 가지 않을까 싶다.”

“너네 집 좀 사는 거 아니었어?”

“내가 얘기 안 해줬었나? 교복만 입고 다녀서 네가 우리 집 형편을 잘 몰랐구나. 흠… 할아버지가 회사 하셔서 어릴 때는 잘 살던 적도 있었는데, 아버지가 물려받으신 후 어쩌다가 회사를 포기하셔서… 그 후로는 어렵게 지냈어.”

“아, 정말…? 너네 아버지 되게 좋은 분처럼 보였는데…”

“맞아. 좋은 사람. 남들 눈에는 딱 그렇게 보일 사람이지. 그런데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융통성 제로에 남들한테 이용이나 당하고 자기 밥그릇 못 챙기는 사람이지. 야,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아냐? 부모덕으로 앞서가는 애들은 언젠가 실력이 부족해 도태될 거래. 나처럼 뭔가 부족한 환경에 있는 집안에서 자라야 실력을 갖춰서 더 잘될 거라나 뭐라나. 헝그리 정신 같은 걸 아직도 믿으시나 봐.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돈 있는 집안 애들은 공부 못해도 유학 가고, 유학 갔다 오면 못해도 영어 강사라도 해서 먹고살겠지. 삶의 최저선이 달라지는 거야.”

  녀석은 고지식한 아버지에 대한 울분을 토로했다. 평소에는 고분고분한 편이면서 한 번 틀어지면 막 나가는 구석이 있는 놈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엄마가 너무 공부를 강요한다면서 가출해서 우리 집에 오기도 했다. 녀석은 대전 소재 국립 대학교의 기계과에 지원했고, 나는 같은 학교 컴퓨터과에 지원했다. 부모님은 서울 소재의 대학교에 갈 수 있는 성적이면서 왜 굳이 대전으로 가냐고 의아해하셨지만, 나는 국립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우겼다. 다행히 우리 둘 다 붙었다. 


3. 

“이제 우리도 곧 졸업이다.”

“그러네… 넌 어떻게 할 거야? 대학원 생각도 있다며.”

“그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닌데. 일단은 대기업 목표로 취업 준비하려고. 너는?”

“아… 나도.”

대학 졸업 이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목표가 생겼다. 

“오, 잘하면 이번에도 같은 회사 가는 거 아니냐? 같이 잘해보자.”

  우리는 둘 다 S전자에 같은 기수로 입학했다. 사업부는 다른 곳에 배치받아서 가까이서 일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같이 수원에 있어서 자주 만났다. 그러다가 녀석의 부서가 천안으로 옮겨가고, 사업부가 아예 분사되면서 소식이 뜸해졌다. 


4. 

  어느 날, 녀석이 연락을 해서 술 한 잔을 했다. 웬일인가 해서 나갔더니, 청첩장을 건넸다. 

“회사에서 만났어" 

  녀석의 와이프가 될 사람은 같은 부서 후배였다. 쓸데없는 억지를 부리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좋다고 한다. 

“너는 만나는 여자는 있냐?”

“만나는 사람은 있는데, 결혼까지 할지는 모르겠다.”

“짜식. 잘 살고 있네. 뭐, 나도 연애를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이 사람은 만날 때부터 느낌이 좀 다르게 오긴 하더라. 그나저나… 너는 회사 다닐만하냐?”

“뭐… 그냥 다니는 거지 뭐. 대한민국 직장인 중에 좋아서 회사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

“나는 입사하고 3년은 꽤 재밌게 다녔다? 다 새로운 거니까, 배우는 느낌이 나서 좋았어. 그런데 이제는 좀 지겨울라 그런다. 맨날 똑같은 일 반복하고…”

“그럼 편한 거 아니야?”

“편하지… 근데 난 그게 싫어.”

“그래서… 설마 퇴사라도 하려고?”

“글쎄? 할지도 모르지.”

“야 인마, 우리 회사 다니면서 퇴사한다고 하는 사람 치고 진짜 퇴사하는 사람 못 봤다. 와이프 될 사람도 같은 회사라며? 그럼 둘이 맞벌이하면 1년에 1억 넘게 버는 건데. 그걸 버리겠다고?”

“뭐, 그럴 수도 있지 뭐. 제주도에 내려가서 펜션이나 해보고 싶기도 하고.”

“푸하하하, 제주도? 펜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짜식아.”

  그때만 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녀석은 결혼 후 진짜 퇴사를 하고, 제주도에 내려갔다. 


5.

  고등학교 때부터 녀석을 따라 이과에 가고, 대전에 있는 대학교에 가고, 같은 회사에 입사했다. 여자를 좋아하는 이성애자이지만, 녀석은 그냥 나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별생각 없이 사는 나에게, 따라서 살고 싶은 모델이 되어주었다. 제주도에 내려간 것은 어찌 보면 참 녀석다운 결정이었다. 그런데 이 선택은 따라 하지 못했다. 쉽사리 따라 할 수 있는 평범한 결정이 아니었으니까. 대신 나는 충실한 관찰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적어도 한 계절에 한 번씩은 제주도에 내려가서 녀석의 펜션에 머물렀다. 어느덧 녀석이 펜션을 운영한지도 2년이 지났다.

“할 만은 하냐?”

“어, 뭐. 회사 다닐 때 수입에 비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고정적인 수입도 있고,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좋아.”

“시간 남으면 뭐하냐?”

“놀지. 늦잠도 자고, 밤늦게까지 TV도 보고. 진짜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것 같아. 눈 떠서 오늘 그게 하고 싶다, 그러면 그걸 하고. 펜션 굴리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하긴 해야 되는데, 그거 몇 시간 하고 나면 나머지는 다 내 시간이니까. 너도 알다시피, 내가 대학교 입학했을 때부터 집이 본격적으로 어려워져서 아르바이트 쉰 적이 없었잖아. 내 인생에 이렇게 쉬어본 적은 진짜 처음인 것 같다.”

“다행이네. 계속 지내고 싶을 정도야?”

“나름…? 그런데 제주도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변하는 것 같아.”

“그러게. 예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멋있는 가게도 많이 생기고. 젊은 사람들도 많이 내려오는 것 같고. 중국인도 많이 생긴 것 같고.”

“5년 후에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미래가 2년 만에 찾아왔어. 국외, 국내 할 것 없이 자본이 빠른 속도로 유입되고 있고. 결국 여기서 뭘 하든 돈 없는 사람은 돈을 벌지 못할 거야.”

“그래도 이 펜션은 네가 땅 사서 지은 거잖아.” 

“그렇긴 한데, 부동산 가치가 떨어지고 있고. 솔직히 말하면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펜션 주인으로 규정되는 게 좀 슬프기도 하다.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하면서 많은 걸 배웠는데 여기서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만 계속하다 보니까 도태되는 것 같아. 회사 다닐 때는 내가 다니는 회사가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증명해줬는데, 이제는 내가 스스로 그 가치를 만들어가야 할 것 같아.”

  녀석은 말로는 도태되는 것처럼 말했지만, 여전히 회사 안에서 회사가 규정해주는 가치에 기뻐하면서 사는 내 눈에는 저만치 나를 앞서 나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책같은 데서 나오는 것처럼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만드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 넌 할 수 있을 거야.”

“짜식, 너 때문에 항상 힘이 된다. 신혼 생활은 재밌냐? 애 낳을 때까지 즐겨. 아들 태어나니까 좋긴 한데, 모든 기준이 아이한테 맞춰지네. 애 감기 걸릴까 봐 겨울에는 밖에 나가서 놀지도 못해.”

“와이프랑 같이 준비하고 있어. 잘 되면 옷이랑 장난감 많이 물려주라.”

“당연하지. 다 줄 테니 꼭 연락해"


6.

  녀석은 2년 뒤 제주도 생활을 정리하고 세종시에 새로운 터를 잡았다.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창업을 준비한다고 했다. 나에게는 예쁜 딸이 생겼다. 

“축하한다, 짜식아~ 요새는 딸이 최고란다.”

“그렇긴 한데… 요새 세상이 험해서 걱정이다.”

“그러냐? 나도 딸이 생기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딸이든 아들이든 아이가 하고 싶은 건 최대한 막지 않고 지원해주는 게 좋은 부모라고 생각해. 나는 내 아들이 학교 가기 싫다고 하면 안 가도 된다고 말할 거야.”

“그래도 고등학교까지는 다녀야 하지 않을까?”

“우리 와이프도 딱 그렇게 말하더라. 그런데 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지금 같은 중고등학교 교육이 아이의 성장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친구도 사귀고, 기본적인 건 배우게 되잖아.”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못된 걸 배우거나, 못된 짓을 당할 수도 있지. 뭐, 나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야.”

“널 고등학교 때부터 봐왔지만… 넌 항상 확신에 차있는 것 같아.”

“내가? 그런가? 사실 난 엄청난 비관론자인데. 그냥 항상 최악을 생각하면서 살다 보니까 막상 그 순간에는 두려운 게 별로 없는 것 같아.”

“넌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기본적으로는. 잘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일단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뭔데?”

“흠… 언젠가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 이 학교 안의 아이들이 해보고 싶은 건 뭐든지 도와줄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대안학교.”

“그래,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말은 이렇게 하면서 믿지 않았다. 해보고 싶은 건 뭐든지 해볼 수 있는 학교라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7.

  20년이 지났다. 나는 회사 내에서 임원이 되는 데 실패하고, 퇴직금으로 프랜차이즈 카페를 차렸다.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월급 주고, 본사에 로열티 주고 나면 남는 돈은 내 인건비 수준이다. 그래도 이거라도 어디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녀석은 정말 창업을 했다. 그것도 세 번이나. 세 번째 차렸던 회사가 대박이 나서 꽤 큰돈을 벌었다고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녀석은 정말 학교를 만들었다. 중고등학생 대상의 대안학교인데, 아이들이 자신이 호기심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 연구를 하든 창업을 하든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해나가는 학교라고 한다. 학비는 무료인데 소수의 학생만 뽑아서 들어가는 데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어느 날 녀석이 카페로 찾아왔다. 

“오랜만이다"

“그러게, 카페는 잘 되고?”

“그냥 딸내미 용돈 줄 수 있는 정도로 벌어. 학자금은 못 대주지만. 요즘 학비가 워낙 비싸야지.”

“요즘은 대학 안 가는 청년도 많다고 들었는데, 딸이 공부를 하고 싶어 했나 보네?”

“응? 그렇지 뭐…”

  사실 아니다. 딸은 굳이 대학을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사실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어 하는 게 없었다. 그래서 대학에 보냈다. 꿈이 없는 고졸보다는 꿈이 없는 대졸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너네 학교 요즘 뉴스에서 종종 보이더라"

“응, 취재를 꽤 많이 오네. 아직은 실험 단계인데 너무 언론에 노출되는 게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도 돼.” 

  난 우리 카페가 TV에 한 번이라도 나오길 소원하는데, 녀석은 너무 유명해지는 것을 걱정한다.  

“아, 사실 너한테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어. 우리 학교 학생 중에 카페에 대한 프로젝트를 하는 중학생이 있거든. 걔가 너를 인터뷰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겸사겸사 찾아왔지.”

“내가 도움이 되려나? 보다시피 평범한 카페야.”

“응, 그래도 도움이 될 것 같아. 해 줄 수 있지? 시간 많이는 안 뺏을 거야.”

“그럼, 누구 부탁이신데.”

“하하, 고맙다.”

  녀석은 굳이 커피값을 계산하고는 다른 볼 일이 있다면서 나갔다. 손님이 없는 한적한 오후에 녀석이 앉았던 자리를 보면서 생각한다. 녀석을 따라 하던 삶을 끝까지 지속했다면 지금의 내 삶은 어땠을까. 같이 제주도에 내려가고, 창업할 때 같이 해보겠다고 했으면 지금의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녀석처럼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애당초 나에게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기는 했었나. 오늘 마시는 커피는 유독 쓰다. 



<끝> 



- 인터뷰일 : 2019년 1월 16일 

인터뷰이의 소설 만족도 : 4/5점

- 소설을 본 인터뷰이의 소감 :

사실의 나열이라 소설이 아니라 일기를 보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아쉽습니다 저 스스로도 해결할 방법을 못찾아서, 저처럼 뚜렷한 장르나 방향성이 없이 의뢰를 하게 될 경우 만족도가 낮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김명선

- 수원에서 인터뷰서점 '리지블루스' 운영

- lizzyblues0330@gmail.com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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