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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Lizzy Mar 15. 2019

#11. 8 대 2

박민경 님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3인칭 주인공 시점>은 1시간의 1:1 인터뷰 진행 후 짧은 소설을 써드리는 프로그램입니다. 소설은 인터뷰이의 동의를 받아 익명화되어 배포합니다. 배포된 소설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8 대 2






 1. 

“으아아앙- 선생님, 지율이랑 주원이가 나랑 안 놀아요”

“뭐라고? 소민아, 울지 마. 선생님이 지율이랑 주원이 혼내줄게.”

  민경은 어린이집에서 놀고 있는 지율이랑 주원이를 불렀다.

“선생님, 왜요?”

“지율이, 주원이. 선생님이 착한 친구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놀 때는 다 같이 놀아야지, 한 명만 빠뜨리고 놀면 그 친구가 얼마나 슬프겠어"

  민경은 그저 조금 엄한 표정을 짓고 말했을 뿐인데 고작 5살인 아이들은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흐엉… 아니, 그게 아니고요. 소민이가 주원이가 집에서 가져온 장난감 가지고 가서 부러뜨리고는 사과도 안 했단 말이에요.”

  지율이 말했다. 

“맞아요… 소민이가 먼저 나빴어요.”

  민경은 아차, 싶었다. 아무리 다섯 살배기 아이라도 이유 없이 평소에 잘 놀던 친구랑 안 노는 게 아닌데.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한 아이의 말만 듣고 다른 아이들을 혼내버렸다. 

“아이고, 그랬구나… 선생님이 미안해. 지율아, 주원아.”

  민경은 아동학과를 졸업하고 바로 어린이집에 취업해 선생님이 된 지 3년이 되었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일이 크게 힘들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자신의 상처는 낯설고 당황스럽다. 민경에게는 아이들 무리에 쉽게 끼지 못하는 아이가 유독 눈에 잘 들어온다. 앞뒤 상황을 살펴보지도 않고 그 아이가 불쌍해 보이고, 그 아이를 챙기지 않는 다른 아이들을 혼내고 싶어 진다. 이럴 때 민경은 자신이 상처 받았던 초등학교 6학년에서 한 치도 자라지 않은 것 같다고 느낀다. 


2.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민경은 부족한 게 없는 아이였다. 공부도 잘하고 야무져서 선생님한테 예쁨 받고, 활발하고 주도적이어서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았다. 민경과 단짝 친구인 소영도 마찬가지였다. 얼굴도 예쁘고 집도 잘 살아서 종종 반 전체 아이들에게 간식이나 자잘한 문구류를 선물로 주고는 했던 소영은 반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둘은 붙어 다니면서 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영이 민경에게 자주 자랑하고는 했던 가죽 표지의 다이어리가 없어졌다. 

  “민경아, 나 다이어리 없어졌어.”

  “헐! 어떡해!!! 누가 가져간 거지?”

  “나 이거 애들한테 거의 안 보여주고 너한테만 보여줬는데… 너 이거 볼 때마다 갖고 싶다는 소리 많이 했잖아.”

  “응, 예쁘니까 그랬지. 아 어디 갔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민경은 소영이 자신을 의심한다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혹시… 네가 가져간 건 아니야?”

  “뭐??????”

  처음에는 황당하다가 곧 화가 났다. 

  “뭐라는 거야, 이소영! 내가 네껄 왜 가져가냐? 내가 도둑이야?”

  “아니면 말지. 왜 화를 내? 괜히 찔리는 거 있는 거 아니야?”

  “뭐래. 괜히 생사람 잡지 마. 네가 괜히 여기저기 자랑하니까 누가 재수 없다고 생각해서 가져갔나 보지.”

  “뭐? 재수 없다고? 너 말 다 했어?”

  점심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놀러 나갔던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오고, 교실 한복판에서 싸우고 있는 민경과 소영에게 다들 시선이 집중되었다. 삼삼오오 수군거리고, 짓궂은 남자애들은 “선빵 날려버려~” 같이 싸움을 부추겼다. 곧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교실은 정리되었지만, 이후로 민경과 소영은 단짝이었던 과거가 무색하게 냉랭한 사이가 되었다. 소영은 금세 자신을 따르던 여자애 무리와 그룹을 지어서 다니기 시작했던 반면, 민경은 새로운 무리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겨울방학을 맞기까지 두 달 동안 민경은 밥도 혼자 먹고, 화장실도 혼자 다니고, 체육 시간에도 혼자 나가는 외톨이 생활을 했다. 민경의 학생 시절 중 가장 힘들었던 두 달이었다. 활발하고 주도적이던 민경의 성격은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으로 차츰 변해갔다. 


3.

  중학생이 된 민경은 단짝 친구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아이가 생기면, 잘해주면서 마음을 얻은 뒤 그 아이에게 다른 친구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했다. 세 명이나 네 명이서 그룹 지어 다니길 바라지 않았다. 딱 한 명, 민경이 완전히 믿을 수 있는 한 명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그 한 명에게 잘해주는 동시에 연인 수준으로 구속했다. 소소한 트러블이 없지는 않았지만 착한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큰 사건 없이 중고등학교 생활을 보냈다. 

  고등학생이 된 민경을 흔들었던 사건은 짝사랑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1학년 때는 성실하게 공부했다. 그런데 2학년이 되어 그 녀석, 차종훈과 짝이 된 이후로 민경은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열렬한 짝사랑에 빠지게 된다. 

  발단은 필통이었다. 공부에 크게 취미가 없었던 종훈은 수학 시간에 짝이었던 민경의 필통에 있는 펜을 슬금슬금 하나씩 가져가서 써보고 다시 넣어놓았다. 마치 자기 필통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 마] 

  민경은 종훈에게 쪽지를 건넸다. 

  [시른데~]

  종훈은 답장을 보내고 계속 민경의 필통을 가지고 놀았다. 별 것 없는 장난이었을 뿐인데, 그 장난을 치는 종훈이 키 크고 축구를 잘하는 남자애였다는 것이 문제였을까. 쌍꺼풀 없이 큰 눈과 깨끗한 피부가 문제였을까. 인기가 많아서 종훈에 대한 얘기를 하는 여자애들이 많다는 게 문제였을까.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민경은 그날부터 종훈을 마음에 두기 시작했다. 혹시 종훈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어서 필통을 건드린 건 아니었을까, 온갖 상상을 하면서 짝사랑을 키워갔다. 

  짝은 금방 바뀌었고, 그 후로 종훈이 민경에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종훈이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거나 뭘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민경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심지어 독서실에 있다가 종훈의 ‘뭐하냐?’는 문자를 받았을 때는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알고 보니 잘못 보냈던 문자였지만 이후로도 민경은 독서실에서 핸드폰에 신경을 쓰느라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4.

  혼자만 끙끙 앓았던 짝사랑과 함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민경이 처음 입학했던 과는 정보공학과였다. 남초 집단인 공대에서 민경은 선배들과 동기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인기녀가 되었다. 대학교 입학 전에 살도 빼고, 엄마의 자금 지원을 받아 쌍꺼풀 수술도 했던지라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의 리즈 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괜찮은 외모를 지녔었다. 하지만 외동딸로 지내면서 남자와 크게 가까워져 본 적이 없었던 민경에게 갑작스러운 남자들의 관심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덩달아 전공 수업은 너무 어렵고 흥미도 느껴지지 않아 2학년 때 아동학과로 전과했다. 여초 집단인 아동학과를 다니면서 맘 맞는 단짝 친구도 사귀고 무난하게 학교를 졸업했다. 


5.

  졸업 후 어린이집에서 4년 일하면서,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지금의 남편 지경민을 만나게 되었다. 네 번째 매칭에서 만난 남자였는데, 민경은 회사원같이 말끔한 그의 외모가 맘에 들었다. 경민은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소개팅에 입고 나온 남색 트렌치코트가 멋스럽게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1년 정도 연애를 한 뒤 결혼식을 올리고 친정과 멀지 않은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처음에는 일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할까도 했지만, 내조에 전념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을 그만두었다. 

  민경보다 5살 연상의 경민은 평소에는 차분한 성격이지만, 화를 낼 때는 무서운 사람이다. 그는 성격이 꼼꼼한 편이라 민경이 해놓은 설거지에 얼룩이 묻어있다거나 밥솥에 오래된 밥이 방치되어 있을 때 무섭게 화를 냈다. 만약 민경이 일을 하고, 경민이 살림을 했다면 지금의 민경보다 더 잘하지 않았을까- 민경은 종종 생각했다. 경민은 한 번 화를 내면 2~3일 정도 그 화가 지속되면서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가고는 했는데 결혼 생활이 지속되면서 화를 푸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착하고 좋은 사람을 잘 만나서 결혼했다고, 민경은 생각한다. 


6.

  임신을 준비하고는 있지만 압박받는 상황은 아닌 상황에서 요즘 민경의 주요 일과는 가사 노동과 책 읽기다. 심리서를 주로 읽으면서 과거에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돌아보고 자신을 이해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지금의 삶이 자신이 살 수 있었던 최선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지금보다 더 인정받는 사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좋은 남편, 귀여워해 주시는 시부모님,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친정 부모님까지, 삶에서 중요한 사람들과는 다 좋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 민경은 자신 안에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있다고 느낀다. 그 구멍이 뭘까 고민되는 요즘이다. 


<끝> 



- 인터뷰일 : 2019년 2월 7일 

- 인터뷰이의 소설 만족도 : 5/5점

- 소설을 본 인터뷰이의 소감 :

속이 시원하게 표현을 잘 해 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너무 제 맘을 꼭 아시는 것처럼 잘 써 주셔서, 금새 읽었네요. 그리고 또 읽고.. 제 얘기가 소설이 된다는 자체가 이렇게 "속 시원한" 작업이 되어서 저에게 소설로 남은 것이 무어라 표현하지 못 할만큼 값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훌륭하게 잘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김명선

- 수원에서 인터뷰서점 '리지블루스' 운영

- lizzyblues0330@gmail.com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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