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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Jul 02. 2017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으로 사는 법

크리스텔 프티콜랭,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1.

제목만 보고는 단순하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하게는 살 수 없는 사람이

왜 그렇게 하는 것이며,

무엇이 다른 사람과 다르고,

어떻게 해야 이런 자신을 부여잡고 잘 살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었다.


2.

이 책에서 '정신적 과잉 활동인'으로 지칭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과민한 오감

지나치게 풍부한 감수성

쉬지 않고 돌아가는 뇌

완벽주의

거부에 대한 두려움

낮은 자존감


여러 가지 특징이 나오지만 내가 공감한 특징만 몇 가지 추려보았다.

사실 '응? 난 전혀 안 이런데' 하는 부분도 꽤 많아서 내가 이 책에서 나오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파트 3에서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생존 전략'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이 꽤 흥미로워서 정리해본다.


3.

저자는 <신경-논리적 단계>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어떤 사람의 말에서 표현되는 바는 환경, 행동, 능력, 가치와 신념, 정체성 5가지 범주로 표현될 수 있다고 한다.

예시를 들자면 이렇다.(224p)


- 우리 집은 식물을 많이 키워요.(환경)
-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죠.(행동)
- 난 식물을 키우는 재주가 있어요.(능력)
- 식물을 좋아하거든요.(가치)
- 실내 공간에 생명력을 더해 주죠.(신념)
- 난 정원사가 되었어도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요.(정체성)


이 5가지의 범주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종교적 관념보다 훨씬 광범위한 의미로 쓰이는 '영성'이 있다.

이 6가지 범주는 대등하지 않고 피라미드처럼 단계를 이룬다. (그림 참고)

어떤 말이 어떤 범주에 해당하는지를 분류하는 능력은 쓸데없는 오해를 하거나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걸 '잘못 알았다'는 것은 하나의 '행동'이다.

그런데 이 행동 뒤에 '그러니까 난 바보 멍청이'라는 이상한 인과 관계를 붙여 '정체성'으로 연결시키는 게 정신적 과잉 활동인의 오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여러분'은 모두 '정신적 과잉 활동인'을 지칭한다)  


나는 앞 장에서 여러분의 가치 체계는 절대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우 정교한 (행동) 수칙들과 이어져 있다고 했다. '~하다면(가치) ~해야만 한다.(행동)'는 식이다. 예를 들어 친구 사이라면 필요로 하는 순간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226p)
 여러분은 생각 없는 행동은 터무니없다고 본다. 하나하나의 행동은 필연적으로 어떤 가치와 이어져 있다. 하지만 그거 어디까지나 여러분의 논리적 연쇄일 뿐 다른 사람들과는 상관없다. (226p)
 여러분은 뭐든지 뒤섞고 어림짐작하는 데 선수다. 사소한 행동 하나로도 영화 한 편을 찍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때려치우고 긍정적인 논리적 연쇄를 만드는 훈련을 해 보자.(227p) 


난 역시 사소한 행동 하나로도 보고서 분량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우울하고 예민할 때는 글감을 찾기가 더 쉬워 좋은 면도 있지만, 슬프거나 화나는 감정도 많이 느끼게 된다.

남자 친구의 사소한 행동도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라는 가치나 정체성으로 연결시킨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의 인생을 꼬이게 하는 마지막 측면은 모든 정보를 정체성 단계에 놓으려는 강박 관념이다. (227p)


행동은 행동으로.

쓸데없는 '그러니까' 만들지 말기.


4.

저자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 비록 과도하게 활동하는 뇌를 가졌지만 최적화를 통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

먼저, 가벼운 과로는 오히려 좋다고 한다. 남들보다 왕성한 에너지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정선을 알기가 어렵기 때문에 번아웃 상태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낙타와 비슷하다. 100킬로그램쯤 짐을 실어야 힘차게 걸음을 옮기며 최상의 효율성을 보여 주니까.
하지만 그 짐에 1킬로그램만 더 보태도 낙타는 어느 순간 주저앉아 버린다.
그러니 그 1킬로그램을 조심해야 한다. 예상치 못했던 변수들이 들어설 자리를 남겨 둬라. (243p)


그리고 두뇌가 원하는 5가지 욕구를 채워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 5가지 욕구는 학습, 운동, 창의성, 예술, 정서적 교감이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흥미로운 문장을 꼽으면 다음과 같다.


과잉 활동을 하는 뇌는 창조를 위해 태어났다. 손을 써서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 지적인 창작, 예술에 관한 것이라면 여러분의 뇌는 아주 잘 상상하고 고안하고 구상하고 생산하고 제작한다. 정신 활동이 유별나게 활발한 뇌는 흥분되는 일에 동원되지 못하면 천 갈래 만 갈래 생각으로 방황하고, 따분해하고, 우울증에 빠진다. 결국은 일상에서 현실감각을 잃고, 자기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줄 알 것이다. (246p)

내 우울증의 원인이 흥분되는 일의 결여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러분은 꿈을 꾸어야만 정신적 균형이 잡히는 사람들이다. 현실이 언제나 견딜만한 것은 아니기에 꿈으로 긍정적인 생각의 물꼬를 터야 한다. 무엇보다도 꿈이라는 회중전등이 있어야 인생의 가능성들을 탐색할 수 있다. (247p)

벌써, 또는 아직, 이십 대 후반이지만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어릴 때 꾸는 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릴 때는 일단 크고 봐야 했는데, 지금은 이미 난 컸다는 것이다. 

이미 큰 나에게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선택과 포기, 그리고 노력일 것이다. 

요 몇 년 사이 꾸는 꿈을 실현시킨 비율은 참 낮지만 그래도 꿈을 꾸는 나는 균형이 잡힌 상태다. 


5.

여러분은 덩치만 큰 아기, 사랑과 정을 듬뿍 받으며 살아야만 하는 사람이다. (...) 그러니 속을 털어놓고 지낼 사람들을 잘 보고 고르기 바란다. 세상에는 여러분처럼 덩치만 자랐지 여전히 아이처럼 순진한 사람들이 그래도 꽤 있다. 그들을 찾는 것은 여러분 몫이다. (252p)

'덩치만 큰 아기'라는 표현이 참 재밌다. 

어떤 면에서 난 어린이 시절의 나와 한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의심은 많지만 그래도 순진한 편이다. 


이런 내가 때로 답답하지만 그래도 사랑스럽다. 

윽.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그래도 이 책에서 그러라고 한다.


내 인생의 남자(혹은 여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가? 여러분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여러분 자신과 살아야 한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더없이 자상하고 살가운 배우자처럼 대하라. (...) 요컨대 자기 자신과 다정하게 속삭여 보라. 여러분은 가장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자기를 스스로 챙겨야지, 누가 챙겨 준단 말인가? (237p) 



*이 글의 모든 인용구는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크리스텔 프티콜랭, 부키 출판사)에서 인용되었습니다.  


<끝>




글/ 김명선
- 에세이 <리지의 블루스> 독립출판
- 인스타그램 @bookstore_lizzy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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