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연,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1.
결혼을 한지 한 달 반이 지났다.
우리 부부는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평온하게 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가사노동비를 받고 집안일을 전부 하기 때문에 집안일 때문에 싸우는 일은 없다.
늦잠과 게임을 좋아하는 남편도 자신의 일상이 크게 침범받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남편은 요즘 주위 사람들에게 '행복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하는데, '그럭저럭 행복하다'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나 역시 서점에 손님이 별로 없는 것 빼고는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2.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얘기한다.
결혼보다는 아이의 탄생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고.
그럴 것 같다.
2살 많은 친오빠가 3년 전에 결혼해 벌써 아들이 돌이 지났고, 둘째가 뱃속에 있기 때문이다.
아주 간접적이긴 하지만, '육아란 이런 것이군'에 대해 생각할 순간들이 꽤 있다.
그래서 난 벌써부터 고민을 해본다.
아이가 생긴다는 건 어떤 일일까.
나는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등등.
3.
MBC 라디오 PD인 장수연 작가의 에세이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대부분 아이의 탄생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엄마'라는 정체성에만 매몰되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자, 예민한 감정을 지닌 한 사람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아이를, 아이를 키우는 자신을, 아이를 키우는 데 비협조적인 사회를 열심히 관찰한다.
시어머니, 페미니즘, 노키즈존 등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멈칫거리면서도 뾰족하게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놓았다. 특히 노키즈존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거의 100% 찬성하는 제도였는데, 이 글을 읽고 나서 '이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4.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인 서천석 선생님이 진행하는 육아 팟캐스트에 임경선 작가가 출연해 '아이 역시 가족 공동체의 일원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동의한다. 나와 남편과 아이들은 한 오디오를 나눠 써야 하는 한 명 한 명의 가족 구성원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거실이나 자동차에서 남편이 좋아하는 메탈리카 노래만 듣지 않았듯이 지금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요만 들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 43~44페이지
내가 밥을 먹으라고 하면 하율이는 바로 와서 밥을 먹어야 하나? 내가 조용히 하라고 하면 조용히 해야 하나? 하율이는 나에게 화를 내면 안 되나? 왜 그렇지...? - 148페이지
아이를 '그저' 가족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하는 것은 상전 모시듯 모든 걸 아이에게 맞추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아이 역시 부모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고 말대답도 할 수 있는 존재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 내가 크게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는 내가 무엇을 한다고 더 빨리 자라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하지 않는다고 더 천천히 자라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율이는 자연스럽게 내가 알려주지 않은 말을 했고, 점점 복잡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 66페이지
나는 아마 높은 가능성으로 일하는 엄마가 될 것이다. 그러고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많이 미안해질 것 같다. 그럴 때 기억하고 싶은 말이다. 물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좀 더 빨리 말할 수도 있고, 좀 더 예쁜 그림을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자라는 것의 팔 할은 아이 몫일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될 기회인 것 같다. 우리가 자동적으로 훌륭해진다는 게 아니라 그럴 기회를 얻는다는 뜻이다. 절대적으로 강자인 내가 철저히 약자인 누군가에게 가슴 깊이 우러나는 존중감으로 최선의 배려를 하는 것, 자식이 아니면 내가 누구를 상대로 이런 사랑을 해보겠는가. - 76페이지
아이를 기르다 보면 보살이 된다는 말과 맥을 같이 하는 듯하면서도 아름다운 표현이라 옮겨본다.
대화란 무엇일까.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무엇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이라도 주고받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버벅대는 부분, "음..." 하고 머뭇거리는 순간, 말을 고르는 동안의 침묵, 했던 말을 또 하는 단어의 낭비 등등 매끄럽지 못한 그 모든 순간 속에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의 무언가가 들어 있는 건 아닐까. - 122페이지
이 책을 엄마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이런 주옥같은 문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첫 번째 회사 사장님은 평소에 말도 빠르게, 대답도 빠르게 하는 나에게 항상 대답하기 전에 약간의 멈춤(pause)을 가져보라고 하셨다. 그 머뭇거림이 생각이 깊은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고 하셨지만, 꼭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좋은 대화를 하는 데 멈추어 생각하는 시간은 소중하다.
나는 기억한다. 늦은 밤 술자리에서 내게 "어떻게 아기 엄마가 이 시간에 술을 마셔요?"라고 묻던 그 남자의 말투를. 그날 내가 불쾌감을 표시하여 술자리의 흥을 깨뜨린 것에 대해, 기어코 당신에게 사과를 받은 것에 대해,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 134페이지
아마 그 남자도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순진하고 배려 없는 호기심이었다고 본다. 내가 아이 엄마가 되었을 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도 기필코 술자리 흥을 깨고 그 사람에게 사과를 받아내리라 다짐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맘충이 문제다. 그동안 아이 엄마들이 진상짓을 해왔기 때문에 노키즈존이 생긴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진상 짓을 해서'가 아니라 '진상 짓을 할 가능성' 때문에 입장을 제지당했다. 이게 정말 정당한가? - 212페이지
모르겠다. 어떤 걸 비교군으로 삼느냐에 따라 저 주장은 정당화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본다. 어느덧 자영업자가 된 나의 입장에서는 '진상 짓을 할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높다면 그 유형을 아예 차단하는 게 맘은 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냐, 하면 아니라고는 생각한다.
나는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한 당신을 응원한다. 지지한다. 그 선택에 따르는 행복을 충만하게 누리길 기원한다. 책 출간을 준비하면서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며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 사는, 당신들의 부모님이 부러워할 그 '멀쩡한 여자'가 하는 말이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듯 아이는 행복의 증명이 아니며, 당신이 선택에 따르는 무게를 감당하는 딱 그만큼 나 역시 내 선택의 대가를 치르며 살고 있다. - 228~229페이지
심리 상담을 하다 보면 내가 내담자에게 건네는 말의 팔 할은 돌고 돌아 '선택의 대가'로 귀결된다. 그만큼 어떤 선택을 하든, 거기에 따르는 무게를 잘 예상하고 감당할 수만 있다면 틀린 선택은 없다.
5년 내에 내가 출산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이 주는 고통과 행복에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위 글의 모든 인용구는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장수연, 어크로스)에서 인용했습니다.
<끝>
글쓴이 김명선
수원 매탄동 골목에서 심리상담 서점 '리지블루스'를 운영합니다.